증시 상승 이끌던 연기금, 10월 첫날 1644억원 순매도
"연기금 추가매수 여력, 전보다 크지 않을 것" 전망도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 확산, 미·중·유럽 무역갈등, 미국 대통령 탄핵 논란 등 부정적 이슈가 다시 고개를 들면서 지난달 코스피지수의 상승 행진을 이끈 연기금의 동향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형주 쇼핑에 집중하던 연기금이 순매수 기조를 멈추면 코스피지수도 상승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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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 만에 1500억 이상 판 연기금

3일 금융정보 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민연금 등이 포함된 연기금은 9월 한달 동안 유가증권시장에서 2조5556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2조5600억원어치를 산 2011년 8월 이후 가장 큰 규모(월 단위)다. 연기금은 8월에도 2조4908억원 매수 우위를 보였다. 2개월 만에 5조464억원을 사들인 것이다.

8월 7일 1909.71(종가 기준)까지 추락하며 1900선 붕괴를 염려하던 코스피지수는 연기금의 질주 덕에 9월을 2063.05(30일 종가)로 마무리했다. 코스피지수는 9월 4일부터 24일까지 13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기도 했다. 연기금은 8월 21일부터 9월 26일까지 무려 25거래일 동안 쉬지 않고 ‘바이 코리아(Buy Korea)’를 지속했다.

그러던 연기금이 이달 2일 1644억원을 순매도했다. 연기금이 1500억원 이상 순매도한 건 지난 3월 14일(2850억원) 이후 약 7개월 만이다. 물론 기관들 덩치에 비하면 이 정도 액수는 큰 게 아니지만, 미리 책정된 자산 비중 정책에 맞춰 움직이는 연기금 특성을 고려하면 "상승 랠리가 끝났나?"라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연기금 맏형인 국민연금의 경우 올해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이 18.0%다. 국민연금은 7월 말까지 16.3%인 115조1000억원을 한국 증시에 투자했다. 총 기금 적립금 704조3000억원을 기준으로 단순 계산해보면 국민연금은 18.0%를 맞추기까지 약 12조원을 더 투입할 수 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연기금이 8~9월에 집중 매수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비중 목표치에 상당 부분 도달했을 수 있다"며 "앞으로의 추가 매수 여력은 전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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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 리스크 확대 조짐

증시를 둘러싼 환경이 우호적이라는 확신만 있다면 기관은 순매수세를 이어갈 것이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점점 심상치 않다. 우선 미·중 갈등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무역분쟁 소용돌이가 거세지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2일(현지 시각) 에어버스 보조금 지급과 관련한 미국과 EU의 분쟁에서 미국 손을 들어줬다. 이에 따라 미국은 연간 75억달러(약 9조원) 규모의 EU 상품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됐다. EU는 "미국이 관세 부과에 나설 경우 똑같은 조치를 취하겠다"고 맞섰다.

전날 발표된 미 공급관리협회(ISM)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경기 침체에 대한 공포를 키우며 뉴욕 증시의 이틀 연속 하락을 야기했다. PMI는 8월 49.1에서 9월 47.8로 급락했다. 지난 3월 이후 6개월 연속 하락한 결과인 동시에 2009년 6월(46.3) 이후 10년 3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김두언 KB증권 연구원은 "관세 부과 대상이 확대되면서 미국 제조기업들이 투자를 미루고 고용을 줄이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 미 하원의 트럼프 대통령 탄핵 조사 착수 소식도 국내 증시에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김경훈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트럼프는 지지율이 하락할 때마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라는 명분으로 돌발 이슈를 터트려 지지율을 방어해왔다"며 "그때마다 시장에서는 안전자산인 미 달러 강세가 매번 전개됐다"고 했다.

대외 악재에 연기금이 ‘사자’ 흐름을 멈춘다면 대형주부터 피해를 볼 수 있다. 지난달 연기금 등 기관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이 삼성전자(005930)(6402억원), SK하이닉스(000660)(2290억원), 현대차(005380)(1598억원), 셀트리온(068270)(1387억원) 등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종목이기 때문이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여름 이후로는 연기금을 빼면 뚜렷한 매수 주체가 없었다"며 "국내 증시의 유동성 체력이 많이 약해졌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