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충남 아산에 있는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을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디스플레이가 주력 LCD(액정표시장치) 공장인 충남 탕정 L8 생산 라인 4개 중 하나를 가동 중단한 것으로 2일 확인됐다. 중단 라인은 연간 570만대 분량의 TV 패널(55인치 기준)을 찍어내는 곳으로, 삼성디스플레이 전체 LCD 생산 능력의 15%(면적 기준)를 단번에 감축한 셈이다. 해당 장비와 설비는 매각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 업계의 관계자는 "한때 LCD 세계 1위였던 삼성디스플레이가 주력 라인을 폐쇄한 것은 이 시장에서 '질서 있는 철수'를 시작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L8 라인은 삼성이 일본 소니를 누르고 세계 TV 1위에 오르는 데 1등 공신이었다. 2004년 삼성전자는 소니와 LCD 생산법인 S-LCD(삼성디스플레이의 전신)를 합작 설립해 이 공장을 지었다. 소니를 설득해 합작을 주도한 주역이 이재용(당시 상무) 부회장이었다. S-LCD는 세계 최고 품질의 LCD 패널을 삼성과 소니에 공급했고, S-LCD는 삼성전자가 지분의 50%와 1주를 가지고 경영권을 행사했다.

L8 라인 가동으로 삼성은 소니와 화질 경쟁에서 밀리지 않게 됐지만, 경쟁사에 핵심 부품을 의존하게 된 소니로선 결과적으론 패착이었다.

삼성 안팎에서는 "삼성의 LCD 시장 철수 결정은 이 부회장의 결단"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당초 삼성 내부적으로는 '대형 패널 전략을 LCD에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로 전환하자'(이동훈 삼성디스플레이 사장)는 의견과 '시기상조'(김현석 삼성전자 TV부문 사장)라는 의견이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스스로 빛을 내는 OLED는 LCD보다 얇고 선명해 차세대 TV에 적합했지만 제조 공정이 어려워 불량률도 높았다.

경쟁사인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가 OLED TV를 선점한 상황에서 삼성이 LG를 뒤따라가는 듯한 모양새인 것도 부담이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지난해에만 이 공장을 3차례나 방문했고, 경영진에게 "LCD(사업)는 이제 암환자 수준이 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급격하게 성장한 중국세(勢)에 밀리면서 더는 수익성을 맞출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LCD에 애착이 컸던 이 부회장이 뜻밖에도 OLED 전환을 주장한 이동훈 사장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 부회장은 "퀀텀닷(초미세반도체 입자) 기술을 결합한, 한 단계 진화한 OLED를 개발해 단숨에 기술 경쟁에서 앞서나가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한다.

폐쇄·축소하는 LCD 라인을 대형 OLED 라인으로 대체하는 데 2년 정도가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디스플레이로선 LCD 라인의 생산직 감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미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 전체 직원은 2만4700여 명이다. 삼성 관계자는 "각자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목표치는 없다"고 했다. 강제 구조조정 차원은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