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0일 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신한카드 본사. 이곳 25층에 있는 신한카드 사내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했다. 종업원에게 '페이스페이'로 결제한다고 하자 포스기 바로 옆에 있는 단말기가 켜졌다. 검은색 선으로 그려진 사람 머리 모양 윤곽선에 얼굴을 맞춰 넣자 1초만에 '인증이 완료됐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떴다. 휴대전화로는 카드 결제가 완료됐다는 메시지가 왔다.

현금이나 신용카드, 휴대전화 없이 얼굴만으로 결제가 가능한 서비스가 나온다. 신한카드가 개발한 '페이스페이(Face Pay·얼굴을 인식해 결제하는 방식)'가 지난 2일 금융위원회의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되면서 연내 상용화의 길이 열렸다. 신한카드는 페이스페이 기술 개발을 끝내고 본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하고 있다. 신한카드는 안면인식정보 등록에 필요한 실명확인 절차를 간소화하고, 시범 운영 지역을 대학 등으로 확대하기 위해 혁신금융서비스를 신청했는데, 이번에 금융위로부터 승인을 받은 것이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서울에 위치한 모 대학과 이미 페이스페이 도입에 대한 협의를 완료했다"며 "연내 해당 대학 학생들은 학교 내 생활관과 편의점 등에서 페이스페이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카드 본사 카페에서 직원이 페이스페이로 결제를 하고 있다.

◇얼굴 특징 100개 분석해 안면인식…실물카드보다 간편

페이스페이는 3차원(D)·적외선 카메라로 이용자의 얼굴 정보를 추출해 디지털화한다. 이후 신한카드의 결제 정보와 매칭해 실제 결제에 이용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얼굴 전체가 아닌 이목구비의 간격, 뼈의 돌출 정도 등 얼굴 내에서 100개 이상의 특징을 잡아낸 다음 저장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이 때문에 선글라스나 모자 등으로 얼굴 일부를 가려도 본인 여부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성형수술이나 다이어트 등으로 얼굴 형태가 크게 바뀐 경우에는 페이스페이에 얼굴을 다시 등록해야 한다.

직접 체험해본 페이스페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간편했다. 단말기에 페이스페이와 연동할 신용카드 정보를 입력한 뒤 휴대전화를 통한 본인인증을 끝내자 '안면 등록을 위해 정면을 응시해달라'는 메시지가 떴고, 5초가량 카메라를 바라봤더니 그대로 등록이 끝났다. 100개 이상의 특징을 잡는데 5초면 충분했다.

신한카드는 페이스페이가 결제에 필요한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페이스페이 단말기가 설치된 신한카드 본사 지하의 편의점 관계자는 "페이스페이를 사용하는 신한카드 직원이 굉장히 많다"며 "특히 아침 출근길에 많이 사용하는데, 실물 카드를 직접 긁는 데 비해 훨씬 들이는 시간이 짧아 일하는 입장에서도 편하다"고 말했다.

금융위도 "페이스페이는 가맹점 입장에서 고객 스스로 결제를 진행하는 방식이라 결제 업무 부담이 줄어들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카드나 휴대전화와 달리 분실의 위험이 없는 방식이라 훨씬 편리하다"고 했다.

신한카드 직원이 페이스페이에 자신의 얼굴을 등록하고 있다.

페이스페이는 '카드 없는 카드사'를 꿈꾸는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의 야심작이다. 임 사장은 평소 "몇 년 안에 신한카드의 사명에서 '카드'를 떼어내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한다. 플라스틱 카드가 사라지고 디지털이나 생체인증 기술을 활용해 결제하는 방식이 대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페이스페이 같은 기술에 신한카드가 많은 투자를 하는 이유다.

신한카드는 페이스페이 기술을 함께 개발한 LG CNS와 보급형 단말기를 만들고 있다. 지금 시범 서비스에 이용되는 단말기는 상당히 고가여서 많은 가맹점이 설치하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신한카드는 보급형 단말기를 만들어 본격적인 상용화에 대비한다는 계획이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보급형 단말기가 개발되면 기존 단말기 대비 비용이 상당히 저렴해질 전망"이라며 "연내 페이스페이가 도입될 대학에는 보급형 단말기가 설치될 것"이라고 말했다.

◇음파·목소리 결제도 등장

신한카드가 선보인 페이스페이뿐 아니라 최근 IT·금융업계에서는 플라스틱 카드를 대신할 새로운 결제 기술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QR코드나 NFC, 지문인식 같은 기술은 '한물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기술로 무장한 핀테크 업체들이 성장하면서 이런 흐름이 가팔라지고 있다.

최근 금융권에서 관심을 가지는 결제 기술은 '음파 결제'다. 사람은 들을 수 없는 음파를 활용해 소리에 정보를 담아 전송하는 결제 기술이다. 퀄컴,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IT 기업을 거친 이윤희 대표가 2013년 창업한 모비두는 음파에 정보를 담아 전송하는 스마트사운드 기술을 개발해 2017년부터 모바일 결제에 적용하고 있다. 롯데그룹 유통 계열사에서 모바일 앱을 이용하면 음파 결제를 할 수 있는데 매달 380억원 정도의 이용액을 기록하고 있다.

음파를 이용해 결제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소리를 이용해 정보를 보내는 기술인 만큼 스피커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이용할 수 있는 게 음파 결제의 장점이다. 휴대전화는 물론이고 가게의 포스기에도 스피커가 달려 있기 때문에 별도로 단말기를 설치할 필요도 없다. 올 4월에는 이런 장점을 인정받아 글로벌 결제회사인 비자(VISA)가 주최한 핀테크 공모전에서 최종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미 인도네시아 핀테크 업체인 도쿠와 협업해 동남아 시장에 진출한 모비두는 비자와 협력을 통해 본격적인 해외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이윤희 모비두 대표는 "음파 결제는 스피커만 있으면 애플이나 구글 등 운영체제를 가리지 않고 모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범용성이 뛰어나고, 정확성과 보안성도 다른 결제 기술에 뒤처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카드사들도 다양한 생체인증 기술을 결제에 접목하고 있다. BC카드는 목소리를 결제 인증에 사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BC카드의 간편결제 앱인 '페이북'에 목소리를 등록하면 비밀번호 대신 목소리로 결제 인증을 하는 방식이다. 롯데카드는 손바닥을 결제 단말기에 갖다대 결제하는 '핸드페이' 서비스를 내놨고, 몇몇 카드사들은 손가락 정맥 패턴을 이용한 결제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