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출시 과정에서 반대 의견 무시와 심의 기록 조작' '일일 단위 판매 실적 점검' '원금 손실 확률 0% 광고 메시지 발송'….

원금 100% 손실을 불러온 DLS 사태의 이면에는 투자자 보호는 뒷전이고 자기 이익 챙기기에만 혈안이 됐던 은행들의 탐욕스러운 행태가 숨어 있었다. 금융감독원이 1일 발표한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증권(DLS) 중간 검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KEB하나 등 은행들은 판매 과정에서 상품 선정위원회를 졸속으로 운영하고, 투자자들에게 설명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금감원은 8월 말부터 우리·KEB하나 은행, IBK·NH·하나금투 증권, 교보·KB·메리츠·유경·HDC 등 자산운용사들을 대상으로 합동 현장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금감원은 추가 검사를 이어가면서 위규 사항이 확인되면 엄정한 제재를 가하기로 했다. 검사 결과, 두 은행이 판매한 DLS 3954건 가운데 20%인 790건이 불완전판매 의심 사례로 분류됐다. 의심 사례는 향후 추가 검사 과정에서 더 늘어날 수 있다고 금감원은 밝혔다. 원승연 금감원 부원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금감원도 책임감을 갖고 있다"며 "피해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국민들 억울함이 없게 하겠다"고 말했다.

◇60세 이상 투자자가 절반, 원금 반 토막

문제가 된 DLS는 기초 자산(독일 국채 금리, 영국·미국 이자율스와프 금리)이 만기까지 기준치(배리어) 이상을 유지하면 연 3.5~4.0%의 고정 수익을 얻지만, 기준치 아래로 내려가면 원금 전액을 잃을 수 있는 고위험 투자 상품이다.

지난 8월 7일 기준, 우리·하나 은행을 통해 DLS에 가입한 투자자 3243명 중 개인 일반 투자자가 3004명으로 거의 대부분(93%)을 차지했다. 개인 투자자 중 60대 이상 고령 투자자는 1462명(48%)으로 절반에 달했다. 70대 이상도 643명으로 21%가 넘었다. 복잡한 파생 금융상품 경험이 전무한 투자자는 5명 중 한 명꼴(21.8%)이었다.

개인 투자자들 중 1억원대를 투자한 경우가 66%(1988명)로 가장 많았고, 3억원 미만까지 확대하면 83%(2517명)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8월 8일부터 지난 25일까지 만기가 돌아와 확정된 손실액은 669억원으로 투자 원금(1227억원) 대비 손실률은 -55%에 달했다.

◇수수료 챙기느라 투자자 보호는 뒷전

조사 결과, 은행들은 수수료 수입에 집착한 나머지 상품 출시 과정에서 내부 반대를 무시했고, 심의 기록까지 조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하나 은행에서 설정된 DLS 상품 1133건 중 선정위원회 심의에 올려진 건 불과 8건(0.7%)이었다. 이마저도 일부 위원이 평가표 작성을 거절하자 상품 출시 찬성으로 임의 기재하거나, 반대하는 위원을 교체한 후 찬성 의견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출시 이후에는 은행 본점 차원에서 매일 단위로 실적 달성을 독려했고, 직원 평가 항목에 수수료 등 비이자수익 배점을 다른 은행들보다 최대 7배 높게 책정했다. 이에 따라 영업직원과 PB(자산관리가)들은 '원금 손실 확률 0%'라는 마케팅 자료에 근거해 투자자들에게 광고 메시지를 발송했다. '손실 확률이 극히 적다'는 점을 강조해 판매한 사례를 우수 전략으로 선정해 다른 영업점에 전파하기도 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2월부터 DLS 설계와 판매에 참여한 은행·증권사·자산운용사·외국계 투자은행 등 금융사들은 수수료로 평균 총 4.93%를 가져갔고, 투자자들에겐 2.02%의 수익률만 제시했다(6개월 기준). 외국계 투자은행(IB)과 협의 과정에서 한 증권사는 투자자 수익률을 낮추고 그 대신 자신들 수수료를 높여달라고 요구한 사례도 적발됐다.

지난달 11일 현재 DLS 관련 분쟁조정 신청은 금감원에 148건이 접수됐다. 시민단체인 금융소비자원은 1일 DLS 사태와 관련해 손태승 우리은행장과 지성규 KEB하나은행장을 사기 혐의로 고발했다. 이들은 금융 당국의 책임 또한 크다고 보고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도 형사고발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배상 비율은 투자 목적·경험, 상품에 대한 이해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결정할 것"이라며 "사례가 다양해 면담을 통해 배상 비율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