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하는 국내 근해 선사들이 생존 위기에 내몰려 있다. 글로벌 선사들이 아시아 지역에 대거 진출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을 뿐 아니라 수요 부진으로 운임마저 제자리걸음 중이기 때문이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내년 1월부터 환경규제가 시행되면 연료유 가격이 올라 선박 운영조차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흥아해운(왼쪽)과 장금상선(SINOKOR) 컨테이너.

30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해운 대표 운임 지수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의 상하이와 동남아 지역 운임은 지난 27일 1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당 120달러로 전주보다 19달러 올랐다. 2017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던 지난 20일 1TEU당 101달러보다 소폭 상승했지만, 낮은 수준이 유지되고 있다. 동남아 항로 운임은 지난해 연간 평균 1TEU당 145달러를 기록했다.

한국과 상하이를 잇는 노선 운임은 1TEU당 117달러 수준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한국과 상하이를 잇는 노선 운임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TEU당 40달러 이상 하락했다. KMI는 수요 둔화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운임이 2017년 3월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동남아 운임 하락으로 한국 근해 선사들은 큰 타격을 입고 있다. 동남아 지역에서 활동하는 한국 근해 선사는 고려해운, 장금상선, 흥아해운, 남성해운, 천경해운, 동진상선, 범주해운, 동영해운 등이다. 미주 전문 원양 선사인 SM상선도 일부 동남아 노선을 운영 중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동남아를 포함한 아시아 역내 시장 운임이 낮은 상태가 유지되면서 국내 근해 선사는 대부분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고려해운은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이 148억원으로 전년보다 72% 감소했다. 흥아해운은 올해 상반기 누적 적자 규모가 267억원에 달한다. 다른 선사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2020년 1월부터 국제해사기구(IMO)의 황산화물(SOx) 배출 규제가 시행된 이후다. IMO 환경규제가 시행되면 전 세계 모든 해역에서 운항하는 선사들은 연료유에 포함된 황 함유율을 현행 3.5%에서 0.5% 이하로 낮춰야 한다. 이에 대부분 선사는 황 함유량이 적은 저유황유를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저유황유 가격은 t당 550~600달러 수준으로 황 함유율이 3.5% 이상인 고유황유 가격(350~400달러)보다 40%가량 비싸다. 해운업계에서는 환경규제가 시행되면 저유황유 수요가 크게 늘면서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저유황유 가격이 고유황유보다 400달러 이상 비싸질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아시아 역내 지역을 운항하는 근해 선사들은 저유황유 가격이 비싸질수록 손실 폭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동남아 대표 항구인 베트남 하이퐁 등은 바다가 아니라 강에 인접해 있어 3000TEU급 이하 중소형 선박이 투입되는 지역이다. 이정도 규모 선박은 오염물질 저감장치(스크러버)를 설치할 수 없다. 스크러버가 공간을 차지하면 한 번에 실어 나를 수 있는 화물량이 크게 줄어든다. 결국 근해 선사 대부분 저유황유를 쓸 수밖에 없다.

해운업계에서는 저유황유 가격이 오르면 근해 선사 경영난이 가중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연료유는 해운업 원가의 3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유류비에 민감한 구조다. 흑자를 내는 근해 선사가 몇 곳 없을 뿐 아니라 흑자를 내더라도 수억원 이익을 내는데 그치기 때문에 연료유 가격이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국내 근해 선사 중 현금이 넉넉한 곳이 없는 만큼 내년 환경규제로 저유황유 가격이 급등하면 회사 운영이 어려워지는 곳이 나타날 것"이라며 "국내 근해 선사가 하나둘씩 무너지면 아시아 역내 시장에서 한국 선사들이 갖는 점유율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