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 기술 유출과 특허 침해를 둘러싼 LG화학SK이노베이션의 소송전이 가열되고 있다. 고속 성장이 기대되는 첨단 산업 분야에서 재계 3위(SK), 4위(LG) 그룹이 대립하는 데 대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SK 측은 국제무대에서 우리 기업끼리 싸워 득 될 게 없다며 화해하자는 입장이 강하고, LG는 잘잘못을 분명히 가려 재발을 막아야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먼저 포문을 연 쪽은 LG화학이다. 2017년 SK로 이직한 직원 5명에 대해 "영업 비밀이 유출됐다"며 전직(轉職)금지가처분 소송을 내 지난 1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하지만 소송이 진행되던 기간에도 100여명의 인력이 SK로 빠져나가자 LG는 지난 4월 말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 "SK가 영업 비밀을 침해했다"면서 소송을 냈다. 5월에는 서울지방경찰청에 형사고소도 했다.

그러자 SK는 6월 국내 법원에 "LG가 허위 사실로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9월에는 LG·SK가 나란히 "상대방 회사가 핵심 기술 특허를 침해했다"면서 ITC와 델라웨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최근 5개월 사이 국내외에서 8건의 민·형사 소송을 내며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이다. 핵심 쟁점을 짚어본다.

①SK가 LG 직원·기술 불법적으로 빼갔나

LG-SK 간 배터리 분쟁은 '인력과 영업비밀 빼가기' 논란에서 비롯됐다. 2017년 여름 LG에선 주력 사업으로 키우는 전기차 배터리 부문 직원이 한꺼번에 여러 명씩 퇴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들이 SK로 대거 이직했고, LG는 SK에 내용증명을 보내는 등 '인력 빼가기'를 멈추라고 경고하다 그해 12월 SK로 옮긴 직원 5명을 상대로 '전직금지가처분 소송'을 냈다. LG는 내부 조사에서 SK로 이직한 A씨가 동료에게 '나랑 (SK의) 선행개발(팀)에 가서 여기 적용된 거 소개해주면서 2~3년 꿀 빨다가'라는, 동반 이직 권유 글을 사내 메신저로 보낸 것을 확인했다. 메신저에는 '(SK가) LG화학에서 하는 거 다 따라 하려고 하는데'라는 내용도 있었다. 이직자가 퇴사 직전 회사 전산 시스템에서 수백 건에 달하는 핵심 기술 문서를 열람·다운로드·프린트한 사실도 확인했다.

SK도 LG의 배터리 사업 경력사원 100여명을 채용한 것은 인정했다. 또 "LG가 기술 유출 증거라고 제시한 자료들은 이직자들이 자신의 성과를 입증하기 위해 정리한 것들로, 모두 파기했다"고 했다. 법원은 전직금지가처분 결정문에서 "후발 주자 SK는 자동차 배터리 사업과 관련해 전직자의 전문 지식이나 노하우 등을 활용해 시행착오를 줄이고, 개발 시간을 단축하는 등 이익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혀 이직자를 통한 기술 유출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SK는 '인력 빼가기'도 '기술 빼가기'도 아니라고 반박한다. SK는 100% 공개 채용 원칙 아래 경력직을 채용했다는 입장이다. SK는 "이직은 SK의 기업 문화와 미래 성장 가능성, 임금 차이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며 "특정(LG) 배터리 기업 출신 인력의 이직 희망 신청이 넘쳐난다"고 했다. 또 "스웨덴의 한 배터리 관련 기업 홈페이지에는 경력직 출신 기업으로 명시된 7개 기업 중 한국 기업으로 유일하게 LG화학이 있다"고도 했다. 쉽게 말해 'LG가 문단속을 제대로 못 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LG는 자사 직원이 스웨덴 회사로 옮긴 것과 SK로 이직한 것은 비교가 안 된다는 입장이다. LG는 "SK가 비정상적으로 이직자 이력서 양식에 LG 재직 때 했던 구체적인 연구 프로젝트명, 참여 인원과 리더 이름, 성취도 작성을 요구하고, 면접 때도 LG에서 했던 프로젝트를 상세하게 발표하도록 요구해 산업 기밀과 영업 비밀을 빼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② LG·SK 서로 "우리 기술이 최고"

두 회사의 소송전은 배터리 기술과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다툼이다. LG·SK 모두 배터리 기술에서는 최고라고 주장한다. LG는 1992년부터 2차전지 개발을 검토하기 시작해 2009년 세계 최초 양산형 전기차인 GM 쉐보레 볼트용 배터리 단독 공급 업체로 선정됐다. SK는 1991년 국책 과제로 배터리 연구를 진행했지만 이후 중단했다. 2005년 리튬이온배터리 상용화 사업에 다시 착수, 현대·기아차와 독일 자동차회사에 배터리를 공급하면서 본격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LG가 앞서고, SK는 후발 주자라는 점은 각종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올 상반기 배터리 부문 매출은 LG가 3조6596억원으로 SK의 2754억원을 훨씬 앞선다. 최근 3년간 LG는 연구개발에 2조5084억원을 투자, SK(5296억원)의 5배 수준에 달한다. 직원 수, 배터리 생산 능력, 특허 건수도 모두 LG가 SK의 10배가 넘는다.

LG는 작년 후발 주자 SK가 폴크스바겐으로부터 대규모 배터리를 수주하는 등 발전 속도가 빨라지자 영업 비밀 침해를 이유로 소송을 냈다. LG는 ITC 소장(訴狀)에서 "작년 3월만 해도 SK는 폴크스바겐 수주전에 참여할 수 있는 정도의 기술력이 없었고, 인력을 빼간 이후인 작년 11월 전략적 배터리 공급 업체로 선정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SK는 "1996년부터 25년간 조 단위 이상 투자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다"며 "LG와 기술개발·생산 방식도 다르다"고 했다. 또 "LG는 노트북·휴대전화 등 소형 배터리까지 제작하기 때문에 매출이나 인력이 많을 수밖에 없다"며 "특허 역시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③특허침해 맞소송

LG로부터 영업 비밀 침해 소송을 당한 SK는 반격 카드로 특허 소송 카드를 꺼내 들었다. LG가 GM과 아우디, 재규어 전기차에 납품한 배터리에서 자사 특허 2개를 침해했다는 주장이다. 그러자 LG도 똑같이 특허 침해 소송으로 맞대응했다. 미국에서 판매 중인 SK의 배터리가 LG의 미국 특허 5건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LG의 특허 소송에 대해 SK는 "2011~ 2014년 두 회사가 분리막 특허 분쟁을 겪었고, 소를 취하하는 조건으로 10년 동안 문제가 된 특허에 대해 국내외에서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합의서까지 썼는데 LG가 이를 어겼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자 LG는 "소송을 하지 않기로 합의서에 명시된 특허는 한국 특허이고, ITC 등에 소송을 낸 특허는 미국 특허로 엄연히 권리 범위가 다르다"고 반박했다.

④국제 소송전 어떻게 되나

소송 명분을 두고도 양측은 첨예한 대립을 보인다. SK는 "LG의 '묻지마식 소송'에 대응하느라 사업 수주와 시장 대응 등 기회 손실이 막심하다"며 "한국 기업 간 다툼으로 외국 회사만 이득을 보는 어부지리가 걱정된다"고 했다. LG는 "소송은 소모전이 아닌 실력을 정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이고, 영업 비밀과 특허가 정당하게 보장되는 게 중요하다"고 반박한다. ITC에서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진행된 소송은 577건에 이른다. 매년 60건 가까이 제소가 이뤄진 셈이다. 미국 ITC와 법원에서 진행 중인 LG-SK 소송은 6건이다. ITC 소송은 내년 6월 예비 판정, 내년 10월 최종 판정이 내려질 전망이다. ITC가 특정사에 대해 경쟁사의 영업 비밀이나 특허를 침해했다고 판단하면 문제가 된 부품 수입을 금지하게 된다. 미국에서 배터리 사업 자체가 어려워지는 셈이다. ITC 판정을 바탕으로 연방지방법원은 관련 제품의 미국 내 판매를 금지할 수 있고, 수조원의 손해배상을 물릴 수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양측이 최종 결론이 나오기 전 합의할 가능성도 있지만 양측이 끝까지 간다면 소송 결과에 따라 한쪽은 치명적인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