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분쟁이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양사가 서로 "특허를 침해했다"며 맞소송을 이어가는 가운데 중국, 일본, 유럽 등 해외 경쟁사들은 공격적으로 투자를 늘려가면서 전 세계 시장에서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앞서나가고 있다. 에너지 시장 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5월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중국 CATL이 25.4%로 1위를 차지했다. 일본 파나소닉이 20.3%, 중국 비야디(BYD)가 15.2%로 2~3위를 기록했다.

반면 한국 전기차 배터리 ‘빅3’의 점유율은 LG화학 10.8%(4위), 삼성SDI 2.9%(7위), SK이노베이션 2.1%(9위) 순이다. 이들 기업의 점유율을 모두 합해도 중국과 일본 기업에 못 미친다.

중국 CATL은 점유율 기준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 1위 기업이다.

◇중국 ‘배터리 굴기’로 CATL·BYD 급성장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정부 주도의 ‘배터리 굴기’에 힘입어 2016년부터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중국 정부는 자국 배터리가 탑재된 전기차에 차 가격의 30%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자국 기업을 지원했다. 그 결과 2014년 세계 배터리 시장 점유율의 30%를 차지하던 국내 기업들은 최근 몇년 사이 CATL, BYD 등 중국 기업에 추월당했다.

최근 중국 공업정보화부가 발표한 ‘2019년 8차 신에너지 자동차 추천 목록’에는 LG화학(051910), 삼성SDI(006400), SK이노베이션(096770)등 한국 업체 배터리를 탑재한 친환경차는 제외됐다. 정부 보조금을 받으며 급성장한 CATL은 북미 공장 설립을 검토하는 등 해외 시장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 기업이 물량 공세를 기반으로 기술력도 높이고 있어 국내 기업이 더는 안심할 수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가운데 중국 기업이 한국 배터리 전문인력에 3~4배 높은 연봉을 제시하며 이직을 제안하는 등 인재 영입에도 적극적이라 숙련 인재 유출에 따른 배터리 기술 유출에 대한 고민도 커지고 있다.

◇유럽 ‘탈아시아’ 선언…배터리 산업에 60억유로 투자

유럽 대륙은 아시아에 맞서 국가 차원에서 배터리 산업 육성에 나섰다. 프랑스와 독일 정부가 주도하는 ‘유럽배터리연합(EBA)’은 4년간 60억유로(약 7조9000억원)를 투입해 전기차 배터리 공동 개발에 돌입한다고 올해 5월 밝혔다.

EBA가 꾸린 첫 컨소시엄은 연말까지 프랑스 남서부 누벨아키텐 지역에 첫 전기차 배터리 시험공장 건설을 시작한다. 2024년에는 독일에 셀 제조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샤프트, 푸조시트로엥그룹(PSA), 오펠, 지멘스, 만즈, 등 프랑스와 독일 기업들이 컨소시엄에 참여한다.

최근 독일 경제부는 두 번째 컨소시엄 구성을 논의 중이다. BMW, 바스프, 바르타, BMZ 등의 유수 독일 기업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고 독일 일간 한델스블라트가 전했다. BMW는 현재 삼성SDI를 비롯해 아시아 기업들로부터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받고 있는데, 컨소시엄 참여를 계기로 배터리 자급화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은 유럽 내 배터리 공장을 짓는 자국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보조금 지급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EU 국가들이 조직적으로 현재 배터리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한·중·일 기업 견제에 나서면서 한국 기업들의 입지도 좁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왼쪽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국내외 유수 기업들이 배터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는 현 상황에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소송전을 보는 업계의 시각도 부정적이다. 글로벌 전기차 제조사들은 소송전 결과에 따라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배터리 공급처를 중국이나 일본 기업으로 바꾸려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특정 기업의 영업비밀이 유출되거나 특허가 침해를 당했다면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맞다"라면서도 "그러나 갈등이 길어지면 산업 경쟁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양사가 이른 시일 내 합의점을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