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 연구원들이 바이오 분석 실험을 하고 있다.

국내 제약사들이 세계 최대의 바이오 클러스트(바이오산업 집적지)인 미국 보스턴에 잇따라 해외 법인을 설립하고 있다. 현지 업체들과의 협업을 통해 연구·개발(R&D)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국내 개발 신약의 글로벌 진출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현재 LG화학과 유한양행, 삼양바이오팜, GC녹십자 등이 보스턴에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보스턴은 노바티스, 머크, 화이자 등 글로벌 제약사들을 포함해 2000개가 넘는 제약 바이오 기업들이 있다. 종사자만 9만명이 넘는다. 보스턴에는 기업들의 R&D센터와 함께 매사추세츠종합병원 등 세계적인 병원들도 밀집해 신약 개발의 최적지로 꼽힌다.

LG화학, 2년 만에 신약 과제 30여개로 늘려

LG화학은 지난 6월 보스턴에 글로벌 이노베이션센터를 개소했다. 글로벌 이노베이션센터는 신약 후보의 발굴과 현지 개발을 위해 중개의학과 임상시험 전문가들을 포진시켰다. 회사는 글로벌 이노베이션센터를 통해 자체 R&D뿐 아니라 외부 업체, 대학과의 협력을 통한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으로 확보한 유망 신약 후보들을 미국 현지에서 임상 개발한다는 전략이다.

LG화학은 2017년 1월 LG생명과학을 합병한 후 초기 연구 단계를 포함한 신약 과제를 지난해 30여개까지 확대했다. 합병 전인 2016년 10여개에서 3배 가까이 성장한 것이다. 지난해 미국 나스닥 상장사 '큐 바이오파마'의 면역 항암 신약 후보 3개를 도입해 아시아 개발과 상업화 권리를 획득했으며, 영국 '아박타'의 면역 항암 기술도 도입해 공동 연구를 하고 있다. 올해는 국내 '메디포스트'와 치료용 유전자를 도입한 탯줄 혈액 줄기세포치료제에 대한 공동 연구 계약을 맺었고, 벨기에 '피디씨 라인', 스웨덴 '스프린트 바이오사이언스'와 각각 폐암 치료용 항암 백신과 비알코올성 지방간염 치료제에 대한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LG화학은 올해 보스턴 글로벌 이노베이션센터에서 자체 개발한 통풍 신약과 자가면역치료제의 미국 임상 2상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LG화학은 생명과학사업본부의 R&D 투자 규모를 합병 전해인 2016년 912억원에서 지난해 1238억원으로 늘렸다. 이는 지난해 생명과학사업본부 매출의 22%에 이른다.

올해는 1800억원을 R&D에 투입할 계획이다. R&D 인력도 2016년 330여명에서 지난해 410여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450명 이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손지웅 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장은 "앞으로 사업본부 매출의 25% 이상을 R&D에 지속 투자한다는 방침"이라며 "보스턴 글로벌 이노베이션센터를 중심으로 전방위적인 오픈 이노베이션 활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유한양행·녹십자도 잇따라 진출

다른 국내 제약사들도 보스턴에 잇따라 진출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지난해 12월 보스턴에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샌디에이고에 이은 두 번째 현지법인이다. 유한양행은 샌디에이고와 보스턴에 설립한 현지법인을 통해 외부에서 신약 후보 물질과 원천 기술을 발굴하고 있다.

삼양바이오팜도 지난해 보스턴에 삼양바이오팜USA를 설립했다. 삼양바이오팜은 이곳에서 글로벌 제약사, 연구소 등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외부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GC녹십자도 다음 달 보스턴에 현지 사무소를 열기로 했다. GC녹십자는 미국에 현지법인 GCAM을 비롯해 백신 연구를 위한 큐레보, GC랩텍, GC목암 등을 설립해 사업을 진행해왔다. 여기에 보스턴 사무소를 추가해 신약 개발을 위한 정보를 모으고 외부 협력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제약바이오협회 한 관계자는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의 인프라를 활용하기 위해 많은 제약사가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있다"며 "여러 제약사의 보스턴 법인에서 보듯 미국 현지법인들은 판매와 유통을 넘어 신약 R&D와 임상시험으로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