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후 경남 창원에 있는 두산중공업 본사. 420m로 길게 뻗은 공장 한편에 설치된 크레인이 길이 11.2m, 높이 5.2m, 무게 350t짜리 가스터빈을 천천히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450여개 금속 날개(블레이드)가 촘촘히 박힌 가스터빈은 10여분 뒤 케이싱(덮개) 속에 안착하면서 최종 조립 작업이 마무리됐다. 발전용 가스터빈은 압축된 공기와 연료(LNG)를 태워 발생하는 고온·고압 가스로 터빈을 돌려 발전(發電)하는 장비로,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미세 먼지가 석탄 화력보다 훨씬 적게 배출돼 친환경 발전원으로 꼽힌다. 그러나 초고온·초고속을 버티는 고급 기술이 필요해 지금까지 미국·독일·일본·이탈리아만 만들 수 있었다.

지난 18일 경남 창원 두산중공업 본사에서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을 막바지 조립하는 모습. 두산중공업이 2013년부터 국책 과제로 추진한 발전용 가스터빈 국산화는 공정이 95% 진행됐고, 이날 외부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우리나라는 미국·독일·일본·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다섯째로 가스터빈 기술을 보유하게 됐다.

두산중공업이 이들에 이어 세계 다섯째로 발전용 가스터빈 국산화에 다가섰다. 95%의 제조 공정률을 보이고 있는 두산중공업의 가스터빈은 내년 3월까지 성능 시험을 거친 뒤 서부발전이 추진 중인 500㎿급 김포열병합발전소에서 1년 반 동안 테스트 과정을 거쳐, 2023년 상업 운전에 들어간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에서 현재 운영되고 있는 가스터빈 149기는 모두 수입품"이라며 "대당 500억원 안팎인 가스터빈이 국산화되면 2030년까지 10조원의 수입 대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30여년 넘는 가스터빈 하도급업체에서 벗어나 글로벌 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두산중공업이 2013년부터 1조원을 투자하고 21개 대학, 4개 정부연구소, 13개 중소·중견기업이 함께 이뤄낸 성과다.

◇'기계공학의 꽃' 가스터빈… 국산화 눈앞

가스터빈 최종 조립 작업을 지켜본 목진원 두산중공업 부사장은 "우리가 가스터빈을 만든다고 하니 글로벌 회사들은 대부분 비웃었다"고 회고했다. 1500도가 넘는 고온에서 KTX의 6배 속도(마하 1.3)로 1분에 3600회 회전하는 환경을 견뎌야 하는 가스터빈은 합금 소재, 정밀 주조 등 고도의 기술이 필요해 '기계공학의 꽃'으로 불린다. 가스터빈 한 대에 450여개 들어가는 블레이드의 한 개 가격이 중형 승용차 가격(3000만원 안팎)과 맞먹는다. 머리카락 2개 굵기의 진동에도 발전기가 멈춰 설 정도로 정밀한 기술이 필요하다. 일본의 MHPS(미쓰비시히타치파워시스템), 미국 GE, 독일 지멘스 정도가 기술을 가졌다.

◇하도급업체에서 독자 기술국으로

두산중공업은 1990년대부터 GE와 기술제휴를 통해 1300여개 부품을 공급하면서 가스터빈 사업을 해왔다. 2006년부터는 일본 미쓰비시에서 도면을 사 와 직접 가스터빈을 제작해 국내 발전사에 공급했지만 실은 껍데기뿐이었다. 이광열 가스터빈 개발담당 상무는 "핵심 기술인 블레이드나 연소기는 일본에서 구매하는 조건이었고, 기술 이전도 받지 못해 단순 조립하는 수준에 불과했다"고 했다. 두산중공업은 기술을 가진 이탈리아의 안살도 에네르기아 M&A(인수·합병)도 시도해봤지만, 최종 단계에서 이탈리아 정부가 국가 전략 산업이라면서 반대해 무산됐다. 2013년 두산중공업이 '한국형 가스터빈 모델 개발'에 나서자 일본 미쓰비시는 "독자 개발에 나선다면 기술제휴를 끊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기존 글로벌 경쟁사를 제치고 시장 확보가 숙제

두산중공업은 230여개 국내 업체와 가스터빈 '서플라이 체인'(공급망)을 구축했다. 2026년까지 연 매출 3조원, 3만명 이상 고용 창출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다. 국내 LNG 발전소는 물론 미국·사우디아라비아 시장 공략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사소한 고장에도 발전소 전체가 멈출 수 있어 발전기 터빈을 검증되지 않은 후발 업체에 선뜻 맡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김재갑 상무는 "후발주자였던 미쓰비시도 2010년 자국 발전소에 가스터빈 6기를 대량 공급했고, 이를 발판으로 성장해 지난해 세계시장 1위에 올라섰다"며 "우리도 반드시 성공해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