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핵심 원유 시설 2곳이 무인기(드론) 공격을 받아 가동이 잠정 중단되면서 국제유가가 일제히 뛰었다. 석유수출기구(OPEC) 최대 산유국이 생산 차질을 빚으면서 원유 수급 불안이 커진 가운데, 국내 기름값이 치솟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17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0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14.7%(8.05달러) 오른 62.90달러에 마감했다. 상승폭은 2008년 12월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11월물 브렌트유도 14.61%(8.8달러) 상승한 69.0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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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드론 공격으로 사우디의 아브카이크와 쿠라이스의 원유 설비가 가동을 멈추면서 사우디는 하루 평균 570만배럴 원유 생산이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사우디 하루 산유량의 절반, 전 세계 산유량의 5%에 해당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우디가 줄어든 원유 생산량을 16일(현지시각)까지 3분의 1 정도 복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아람코 관계자는 원상 복구까지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전했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현재의 사우디 생산 감소가 향후 6주간 이어질 경우 국제유가는 배럴당 75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은 석유시설 피폭 배후로 이란을 주목했는데, 해외 IB(투자은행)들은 군사적 충돌이 있을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85달러에서 최대 10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국내 기름값도 당분간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정유사가 수입한 원유의 약 31%가 사우디산이다. 국제유가가 2~3주 시차를 두고 국내 유가에 반영되는 점을 감안하면, 다음달 초부터 휘발유·경유 가격이 오를 수 있다.

국내 휘발유값은 이미 지난달 31일 유류세 인하 조치가 종료되면서 3주 연속 내리 올랐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9월 둘째주 국내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주보다 6.5원 오른 리터당 1523.5원으로 집계됐다. 경유는 5.4원 상승한 1375원이었다.

국내 정유사와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서 국내 유가 상승폭을 예측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단, 사우디의 생산 감소 추세가 장기화될 경우, 다음달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700원, 경유는 1500원 안팎까지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7일 현재 서울 평균 휘발유 가격은 1632원, 경유는 1486원을 기록 중이다.

석유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유가는 국제유가 뿐만 아니라 개별 휘발유, 등유 등 제품의 가격과 수급 상황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섣부른 예측은 어렵다"면서도 "이번주 국제유가 상승세가 지속되면 2주 후에 국내 유가도 덩달아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국내 주유소는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국제유가가 오르면 국내 유가에 빨리 반영하고, 내릴 때는 재고 소진을 핑계로 천천히 인하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앞서 유류세 환원 조치 당시에도 국내 주유소는 기름값을 곧바로 인상해 소비자의 원성을 샀다. 이번 국제유가 상승으로 당장 다음달 국내 기름값이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 중 하나다.

국내 정유사들은 3개월치 재고를 쌓아두고 있는 데다가 원유 공급 다변화를 해놓은 상태라 1~2달간은 원유 수급에 차질이 없다는 입장이다.

해외 전문가들도 이번 사태로 국제 에너지 시장이 혼란에 빠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사우디가 전 세계 곳곳에 수백만 배럴의 원유 재고를 비축해두고 있는 데다가 미국이 보유한 전략비축유(SPR) 방출하기로 하면서 타격은 적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마크 하펠레 UBS 글로벌 최고투자택임자는 "(사우디의) 단기 원유 생산 차질이 글로벌 경기 불황을 촉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