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시설이 예멘 반군의 무인기(드론) 습격으로 가동이 중단돼 유가가 급등하자 국내 정유업계가 ‘조용한 미소’를 짓고 있다. 유가 상승으로 정제마진이 개선되고 재고 원유의 가치가 상승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실적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늘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석유 회사인 아람코가 보유한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아브카이크 석유단지에서 14일(현지 시각) 화염이 치솟고 있다.

16일 국내 증시에서도 이같은 기대감이 반영되면서 주요 정유 관련주들은 대부분 오름세를 보였다. SK이노베이션(096770)은 전날보다 2.7% 오른 17만3000원으로 장을 마쳤고 GS(078930)도 3% 상승한 5만600원을 기록했다. 습격을 당한 사우디 아람코가 대주주인 S-Oil(010950)도 2.3% 오른 10만2000원으로 마감했다.

지난 14일(현지시각) AP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세계 최대 석유회사인 아람코가 보유한 사우디의 석유시설 2곳이 예멘 반군의 드론 습격을 받았다. 사우디 정부는 피해 복구가 완료될 때까지 습격을 받은 석유시설들의 가동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의 핵심 석유시설들이 가동을 멈추면서 국제유가는 급등했다. 16일 싱가포르거래소에서 브렌트유 선물가격은 장 초반 전날보다 19.5% 오른 배럴당 71.95달러를 기록했고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가격도 15% 넘게 치솟은 배럴당 63.34달러로 거래가 시작됐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유가가 당분간 강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잇따라 내놨다. 김두언 KB증권 연구원은 "WTI 가격이 배럴당 5~10달러 상승할 것"이라며 "사우디가 비축유를 통해 생산 차질을 상쇄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이번 생산 차질 규모를 감안하면 일시적 수급 불균형은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윤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도 "재고물량 방출을 통해 차질 물량을 상쇄하더라도 정정 불안에 따른 투기적 수요로 인해 유가 급등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단기적으로 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중반까지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유가 상승에 따라 국내 정유사들의 실적 개선을 예상하는 의견도 늘었다. 일반적으로 정유사들은 원유를 사서 석유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기까지 약 2~3개월의 시차가 있어 유가가 오를 경우 정제마진에서 이익을 볼 가능성이 커진다. 또 유가가 오르면 재고물량에 대한 평가이익도 늘어나는 효과도 얻게 된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원유 재고는 최근 5년 평균과 비교해 3월 이후 가장 적은 수준으로 투기적 수요가 붙을 가능성이 크다"며 "정유와 조선업종 등이 단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정유업계에서는 유가 상승에 따른 실적 개선 가능성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기름값이 오르면 재고원유의 평가가치 상승 효과는 기대할 수 있지만, 정제마진 개선 흐름이 계속 이어질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인해 석유제품 수요가 침체돼 실적이 눈에 띄게 개선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유가가 짧은 기간 상승세를 보인 후 안정되면 정유사들이 국내에서 공급하는 석유제품에 곧바로 유가 상승분을 전가해 이익을 보전할 수 있지만, 유가 오름세가 장기간 이어질 경우 오히려 수요가 위축돼 타격을 볼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도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국내 정유사들의 정제마진은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었다"며 "제한적인 유가 상승은 제품가격 상승에 수요까지 개선시킬 수 있지만, 지정학적 위험에 따른 유가 급등이 계속될 경우 정유사들의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