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지난 8월 30~31일 국토교통부에 신차 ‘더뉴 GLE’의 리콜(Recall·차량 안전 관련 제작 결함에 대한 무상 교환·수리) 계획을 제출하고서도 불과 3일 후인 9월 3일 신차 출시 행사에서 리콜 사실을 밝히지 않아 한국 소비자를 기만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 국토교통부는 벤츠코리아의 신차 리콜 사실을 알고서도 규정에만 매달려 공식 자료로 알리지 않아 ‘봐주기 행정’을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리콜 대상은 벤츠의 SUV ‘더뉴 GLE’ 상시 4륜구동 휘발유 모델인 ‘더뉴 GLE 300d 포매틱(4matic)’과 ‘더뉴 GLE 450 포매틱’ 총 529대다. 리콜 사유는 에어컨 응축수 호스 조립 불량이다. 에어컨을 작동할 때 생기는 물이 차량 내부로 들어가 합선을 일으켜 차량 화재, 엔진 이상, 비상 전화 고장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는 지난 3일 신형 SUV ‘더 뉴 GLE’를 발표하고 판매를 시작했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는 출시 이틀 만인 지난 5일 더 뉴 GLE 리콜에 들어갔다.

문제는 독일 벤츠 본사가 지난 8월 더뉴 GLE에 대한 리콜을 시작한 사실을 한국법인인 벤츠코리아가 알고 있으면서도 9월에 이 차를 한국에 출시하면서 소비자와 언론에 리콜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벤츠 본사가 신형 GLE의 제작 결함을 파악한 것은 올해 5월 쯤이다.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 이 차에 대한 결함이 보고됐다. 벤츠 본사는 자체 조사를 진행해 결함의 원인을 찾아냈고, 8월 3일 생산 공정에서 이를 시정했다. 그 때까지 팔린 차에 대해서는 리콜에 들어갔다.

벤츠코리아는 국내에 들여온 더뉴 GLE 529대에 같은 결함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8월말(30~31일)에 국토교통부에 리콜 계획서를 제출했다. 공식 출시를 불과 3일 앞두고 나온 결정이었다. 그리고 예정대로 9월 3일 신차 출시 행사를 진행했지만, 결함이나 리콜에 대한 내용은 전혀 밝히지 않았다. 벤츠코리아가 결함을 고의적으로 은폐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는 부분이다.

벤츠 코리아 관계자는 "공교롭게도 리콜과 출시 날짜가 그렇게 정해진 것"이라며 "정식 판매 전에 이뤄진 리콜이기 때문에 고객에게 알릴 의무는 없다"고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자동차 회사가 출시 이전에 자발적으로 진행한 리콜에 대해서는 따로 자료를 배포하지 않는다"면서 "언론사 1곳에 공지하면 된다"고 말했다.

벤츠코리아는 지난 5일 일간지 1곳에 기사가 아닌 광고형태로 리콜을 알렸다. 하지만 소비자는 이 광고를 온라인으로 확인할 수 없다. 해당 신문사 인터넷 페이지에서 유료 서비스인 '지면 다시보기'를 통해서만 볼 수 있다. 벤츠코리아는 리콜과 관련해 자사 홈페이지에 알리지 않았고, 이미 차량을 계약한 소비자들에게 이메일이나 휴대전화 문자를 보내지도 않았다.

회원 수가 27만명인 벤츠동호회 등 자동차 카페에서는 더뉴 GLE를 사전 계약한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한 카페 회원은 "더뉴 GLE를 사전 계약했는데, 보도를 통해 리콜에 대해 알게 됐다"면서 "벤츠코리아가 들여오는 모델들의 옵션도 부실한데, 리콜까지 숨기려 했다는 것은 한국 소비자 상대로 사기를 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적었다. 또 다른 카페 회원은 "더뉴 GLE의 계약금을 걸었는데, 선루프와 반자율주행 옵션이 빠지고, 리콜에 대해 쉬쉬하는 모습에 계약 취소를 고민하고 있다"고 썼다.

벤츠코리아가 국토부에 리콜 계획서를 제출(8월 30~31일)하고서도 불과 3일 후 한국 출시행사(9월 3일)에서는 소비자들에게 리콜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은 ‘판매 사기’에 가까운 심각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라는 지적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기업이 1억원이 넘는 고가의 상품을 판매하면서 반드시 알려야 할 사실을 제대로 공지하지 않는 등 속임수 판매를 한 것은 사실상 범죄행위"라고 말했다.

또 국토부는 이 같은 벤츠의 행태를 알았음에도 공식자료를 통해 리콜 사실을 공표하지 않는 등 규정에만 얽매인 소극적인 행정행위로 일관해, 한국 소비자 보호에 관심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행 리콜법은 차량을 이미 구입한 소비자를 대상으로 리콜을 공지하도록 돼 있는데, 구입 예정자에게도 알리도록 하려면 법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회에 리콜법 개정안을 제출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상훈 의원(자유한국당)운 "더뉴 GLE 리콜과 출시 과정에서 벤츠 코리아가 법률상 의무를 소홀히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장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