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이션 공포에 소비 줄여...초저가 상품만 찾는 소비자들
밀레니얼 세대 가처분 소득↓...가성비 좋은 다이소 올해 매출 2兆 넘긴다
"아무리 많이 사도 5만원 안 넘어"...돈 쓰고 공유하는 재미 느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965년 물가지수 산출 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0.038%)를 기록하면서 한국에 ‘D(deflation·물가하락)의 공포’가 커지고 있다. 장기 불황의 그늘이 짙게 드리울 지 우려되고 있다.

물가가 적당히 오를 때는 경제가 선순환하지만, 저(低)물가 상황에선 소비자들은 심리적으로 당장의 소비를 줄이게 된다. 앞으로 물건값이 더 싸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일본처럼 저물가가 지속되는 디플레의 늪에 한 번 빠지게 되면 좀처럼 헤어나오기 어렵다.

용인 다이소 물류센터

이러한 분위기는 불황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1000원숍 ‘다이소(Daiso)’의 인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제품에 사람들이 몰릴 수 밖에 없어서다.

다이소의 성장세는 한국에서 급성장한 스타벅스와 궤도가 비슷하다. 두 회사 모두 한국에 첫 매장을 낸지 약 20년간 매장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1997년 5개 매장으로 시작한 다이소는 지난해 1300개로 매장을 늘렸고, 1997년 한국에 첫 진출해 1999년 이대에 1호점을 낸 스타벅스도 현재 매장 수가 약 1300개로 늘었다.

지방에 스타벅스나 다이소 매장이 생기면, 이 곳은 주요 핵심 상권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맥세권(맥도날드 역세권)에 이어 스세권(스타벅스 역세권), 다세권(다이소 역세권)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다. 다세권은 주변보다 임대료가 더 비싸다.

그런데 매출은 다이소가 앞선다. 아성다이소는 지난해 매출 1조978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1조6340억원)보다 21% 성장했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1조5224억원이었다. 다이소가 스타벅스보다 약 4500억원어치를 더 판매한 셈이다.

다이소는 올해는 2조원을 훌쩍 뛰어넘어 2조3000억원 안팎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10년 전인 2008년(약 1840억원)과 비교하면 20배 늘어난 수치다.

◇밀레니얼 세대 가처분소득 감소...기업 이익 악화에 투자와 고용 줄여 ‘악순환’

불황에 다이소 같은 초저가 제품을 파는 상점이 인기를 얻는 것은 소비의 주축이 된 밀레니얼 세대(1981년~1996년 이후 출생자)의 가처분 소득 감소와도 관련이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들어 젊은 가구의 월평균 가처분소득은 줄고 있다. 39세 이하 가구의 올해 2분기 가처분소득은 약 382만원으로 1분기(401만원)보다 5% 가량(약 19만원) 줄었다. 40~49세 가구의 2분기 가처분소득도 411만원으로 1분기(431만원)보다 20만원 감소했다.

디플레이션 공포가 커지면 기업들은 공장 부지와 기계 가격이 더 내려가길 기다리며 투자를 미룬다. 이렇게 되면 돈이 안 돌고 기업 이익이 악화되면서 투자와 고용 감소로 이어진다. 실업자가 늘고 가계소득이 줄면서 물가는 더 내려간다. 결국 사람들은 더욱 돈을 쓰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는 소비 심리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8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2.5로 한달 전보다 3.4포인트 하락했다. 7월 소비자심리지수도 95.9로 전년보다 4.9 하락했다. 지수가 100보다 높으면 소비 심리를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고, 100보다 낮으면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장기 불황으로 가처분 소득이 늘지 않기 때문에 다이소 같은 초저가 상품이 인기를 끈다"고 했다.

◇가성비·SNS 열광하는 젊은세대에 인기…’돈쓰는 재미 느껴’

다이소는 불황에 더해 밀레니얼 세대의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통 문화를 잘 파고 들었다. 5000원 이하의 저렴한 제품을 구매하면서 ‘돈 쓰는 재미’와 ‘소통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들이 소비할 때 가장 가치를 두는 두 가지 핵심 요소 ‘가성비(가격대비 성능)’와 ‘소셜미디어(SNS)’를 꿰뚫었다는 평가다.

다이소는 품질이 좋은 상품을 저가의 균일가에 판매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500원부터 시작해 1000원, 1500원, 2000원, 3000원, 5000원 등 6종류의 가격으로 판매되며 가장 비싼 제품이 5000원을 넘길 수 없다.

아무리 많이 사도 3만~5만원을 넘지 않는다. 밀레니얼 세대는 상품 구입 그 자체보다도 상품 구매의 전 과정과 그 과정 동안의 경험을 느끼고 여기서 얻는 즐거움을 SNS에 공유한다.

다이소 상품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는 온라인 커뮤니티도 생겨났다. 이 곳에서는 자신이 구매한 다이소 상품과 후기를 올리거나, 특정 상품을 사용해 본 구매자들을 찾아 후기를 묻기도 한다. 20~30대에 인기있는 어린이용 장난감 세탁기와 마론인형 ‘프리티걸' 등은 ‘핵인싸템(인기제품)’으로 떠오르며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소비 트렌드가 온라인으로 이동해도 다이소는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는 이유다. 정동섭 딜로이트 부동산리테일 전무는 "온라인은 결코 오프라인 상점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재미 등의 과정을 대신할 수 없고 소비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오프라인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경험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전략은 일본 불매운동도 비껴가는 분위기다. 아성다이소는 업체 이름을 일본 다이소(大創, 대창) 산업에서 가져와 일본 브랜드로 오해 받곤 한다. 그런데 사실 최대주주는 한국 기업인 아성HMP(지분 50.1%)다. 박정부 아성다이소 회장도 15.9%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다이소는 지난 2017년 2500억원을 투자한 ‘부산허브센터’를 이달 내 완공하고 문을 열 계획이다. 다이소는 현재 용인 등 수도권에 편중된 물류센터를 갖고 있다. 조만간 부산 물류센터가 오픈하면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매장을 확대하는 등 공격적 행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다이소 관계자는 "현재 판매중인 제품 중 약 70%를 국내 업체(680여개)를 통해 생산하고, 이들 중 인기 제품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며 "부산허브센터는 국내 기업들의 해외 수출 전진기지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