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에너지 패권(覇權)을 좌우할 미국 셰일 유전 확보를 위해 거대 석유 업체(메이저)들이 셰일 업체 인수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지난 10년간 '셰일 혁명'을 이끌어온 독립 업체들(비메이저 업체)이 최근 저(低)유가로 인해 경영난에 시달리자, 호시탐탐 반격을 노려온 메이저들이 셰일 유전 업계를 야금야금 인수하고 있는 것이다. 석유업계의 신흥 세력인 셰일 업체들을 기득권 세력인 메이저들이 잠식해가는 구도다.

5일(현지 시각) 블룸버그통신은 올 2분기 메이저 업체인 셰브론엑손모빌이 최대 셰일 유전인 미 퍼미안 분지 내 생산량에서 각각 2위, 5위에 들었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셰일 혁명에서 소외됐던 메이저 업체들의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셰브론과 엑손모빌이 조만간 셰일 생산량에서 1, 2위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 텍사스주와 뉴멕시코주에 걸쳐 있는 셰일 유전인 퍼미안 분지는 하루 평균 420만 배럴(미 에너지정보청)을 생산, 사우디 가와르 유전(380만 배럴)을 제치고 단일 유전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셰일 혁명 이끈 독립 업체들… 저유가로 휘청

10년 전부터 '셰일 혁명'을 주도하며 미국을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끌어올린 셰일 업체들이 저유가에 휘청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30일 "저유가로 올 들어 미국 셰일 업체 26곳이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며 "이는 작년 한 해 28개 업체가 파산한 것과 맞먹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국제유가는 지난해 10월 75달러에서 현재 55달러 선으로 하락했다.

셰일 혁명을 이끈 건 메이저 업체가 아니라 일확천금을 노린 '독립' 업체들이었다. 수백 곳에 이르는 독립 셰일 업체는 2009년 이후 퍼미안 분지, 노스다코타주 바켄 셰일 유전 등에서 수평채굴·프래킹(수압파쇄법) 등 기술적 혁신으로 셰일 혁명을 선도했다. 그 결과 지난해 미국은 사우디를 제치고 세계 1위 산유국에 올랐다.

셰일 혁명은 역설적으로 셰일 업체들의 재정난으로 귀결됐다. 업계에선 셰일 업체들이 이익을 내려면 유가가 최소 50달러를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셰일 혁명으로 국제시장에서 원유 공급이 넘쳐나면서 2014년 100달러를 넘었던 유가는 2015년 이후 25~75달러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자금력이 부족해 월가 투자 자본이나 금융권 부채에 의존해온 셰일 업체들은 늘어나는 자금 조달 비용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국내 정유 업체 고위 관계자는 "셰일 혁명으로 유가가 박스권에 갇히게 됐다"며 "앞으로도 유가가 70달러를 돌파하긴 쉽지 않아서 셰일 업체들의 자금난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셰일 업체 헐값 인수에 나서는 메이저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메이저들이 셰일 업체 인수전에 나서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업계 소식통을 인용, "엑손모빌이 셰일 업체인 파이오니어 내추럴 리소시즈콘초를, 로열더치셸은 WPX에너지시마렉스 에너지를 인수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대런 우즈 엑손모빌 CEO는 지난 4일 한 콘퍼런스에서 "퍼미안 분지 셰일 업체 중 (적정 가격에 살 만한) 매물이 나오는지 주의 깊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셰일업계 1, 2위인 EOG옥시덴탈 페트롤리엄도 인수합병(M&A) 타깃이 될 것이란 업계의 전망이 나온다. 이 업체들은 한 곳당 인수가가 200억달러(약 23조8000억원)를 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미 영국의 메이저 업체인 BP는 작년 10월 BHP그룹의 셰일 유전을 105억달러(약 12조5000억원)에 인수했다. 로열더치셸과 코노코필립스 등 다른 메이저들도 적정 가격에 매물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메이저들은 셰일 업체들의 가격이 더 떨어질 걸로 보고 저가(低價) 매수 기회를 보고 있다. 투자 업체인 C6 캐피털 홀딩스의 마크 로사노 CEO는 "메이저들은 자금난을 겪는 셰일 업체들이 완전히 파산할 때까지 기다린 뒤 헐값에 사들이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한국도 유전 확보 나서야"

국내 에너지 전문가들은 우리도 셰일 유전 확보를 통해 에너지 안보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원전(原電)을 제외하면 한국의 에너지 자급률은 5%도 안 된다"며 "저유가로 셰일 유전을 비교적 싼값에 살 수 있을 때, 적극적인 인수를 통해 에너지 자급률을 높이는 게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했다.

신현돈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도 "지금이 셰일 업체 인수에 나설 때"라며 "수익성에 민감한 민간 업체들이 나서기보다는 석유공사, 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들이 장기적 관점에서 셰일 유전을 확보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미국의 한 석유 회사가 셰일 석유를 시추하고 있는 모습. 5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석유 메이저 업체인 셰브론과 엑손모빌이 최대 셰일 유전 퍼미안 분지 내 생산량에서 각각 2위, 5위를 차지했다. 셰일 시장을 노린 석유 메이저 업체의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