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마른수건 짜는 심정으로 고민했다"고 했다. 최근 ‘하반기 경제활력 보강 추가 대책’을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내년도 공공기관 투자계획 중 1조원을 올 하반기에 집행하기로 하는 등 말 그대로 쥐어짠 흔적이 역력하다. 정부가 현 경제상황을 엄중하게 보고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불과 20일전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은 튼튼하고 근본적 성장세는 건전하다"고 했다. "일자리 지표가 개선되고 고용안전망도 강화되고 있다"며 정부 정책 효과를 강조했다. "근거 없는 가짜 뉴스나 허위 정보, 과장된 전망으로 시장의 불안감을 키우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도 했다.

본예산을 크게 늘리고 추경 예산을 편성한데 이어 또 다시 경기부양책을 내놓은 배경은 이해할 수 있다. 생산·소비·투자·수출 등 주요 경제지표에 빨간불이 켜진지 오래다. 올해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얼마전 대통령 발언에서도 드러났듯이 경제 상황에 대한 정부의 판단과 메시지는 혼란스럽다.

더욱이 마른수건 쥐어짜기가 최선인지도 의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재정중독’ 증상을 보이고 있다. 돈만 풀면 다 해결된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문제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근본적인 해법을 찾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임기응변과 땜질로 넘기기에는 한국 경제 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아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많은 ‘경제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수십년만에 최저·최악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작년엔 고용참사가 있었다. 월 평균 가계 소비지출은 2006년 조사 시작 이후 최대 감소폭을 나타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경기 동행·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70년 이후 최장의 동반하락세를 이어가기도 했다.

지난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소비자·수출·수입 물가지수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GDP 디플레이터도 3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 4분기~1999년 2분기 이후 20년만에 최장 기록이다. 앞으로 기록을 갱신할 가능성도 크다. 한국 경제에 디플레이션의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소득불균형은 2003년 관련 통계 작성이후 최대 수준으로 확대됐다. 최상위 20% 소득을 최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소득 5분위 배율은 2분기에 5.30으로 사상 최대였다. 중위소득 50% 이상~150% 미만의 가구 비중도 2분기에 58.3%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중간계층이 줄어들고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경제지표가 곤두박질칠 때마다 그 의미를 축소하기 위해 온갖 핑계를 대고 있다. 소비자물가에 대해서는 농·축·수산물 등 일부 품목 물가가 내린 탓이라고 했다. 소득불균형 심화에 대해서는 고령화 진전에 따른 무직(無職)가구와 1인 가구 증가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다 대외여건 악화의 영향이 크다는 설명도 빠지지 않는다.

변명이기는 하지만 나름 근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대외여건 악화로 한국 경제 전망이 더 불투명해지고 있다. 지난 2분기에 독일, 영국, 홍콩이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전세계적으로 ‘M(마이너스)의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한국은 여기에 더해 한·일 경제갈등의 추가 부담까지 안고 있다.

그렇다 해도 주요 경제지표가 대부분, 그것도 기록적인 수준으로 악화된 이유를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과거 대외여건이 나빠질 때마다 주요 경제지표가 일제히 10년, 20년만에 최악 수준으로 추락하지는 않았다.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추세로 인해 무조건 소득분배가 나빠질 수밖에 없는 것도 아니다. 2015년까지 몇년 동안에는 오히려 소득불균형이 개선됐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신기록 행진’은 과거 정부와 다른 특별한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소득주도성장 정책이다. ‘족보’도 없는 이론을 들고 나와 무리하게 반(反)기업 정책을 밀어붙여 경제 체력을 고갈시킨 탓이다. 한국 경제가 작은 충격에도 경기(驚氣)를 일으키고, 저소득층 지원과 일자리 예산을 쏟아부어도 효과가 나지 않는 이유를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물론 정부는 이런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숱한 경고가 있었고, 실제 치명적인 결함과 부작용이 드러났어도 정부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정책 실험의 책임을 부정하고 ‘소주성’을 옹호하기 위해 무조건 남 탓만 하고 있다. 경제 상황에 대한 정부 판단과 메시지가 오락가락하는 가장 큰 원인이 여기에 있다.

소주성에 대한 이 정부의 집착은 ‘조국 지키기’를 방불케 한다. 세상이 뭐라 하든 절대 물러서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른수건 쥐어짜기’가 더 불안해 보인다. 정책 실패를 가리기 위한 무리수로 경제를 살릴 수는 없다. 재정지출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당연히 남용의 부작용도 크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상식을 무시하고 있다. 한국 정치와 경제가 ‘일수불퇴’, ‘낙장불입’의 오기와 독선으로 멍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