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패배 후 쓴 ‘1219 끝이 시작이다’란 책에서 "우리의 확장을 가로막았던 근본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민주, 인권, 복지, 사람 등 좋은 가치를 진보가 모두 갖고 있지만, 국민이 지지하지 않고 거리감을 느끼기까지 하는 이유는 교조주의와 근본주의가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근본주의는 자신의 신념이나 근거가 합리적이지 않을 때조차 그런 신념을 고집하는 태도를 말한다. 내 생각이나 입장이 옳고 상대방의 의견은 잘못됐다는 생각이다. 나쁘게 말하면 독선과 아집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문 대통령은 대선 패배 후 진보가 이런 근본주의에서 벗어나 사고를 확장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과, 그런데도 그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겠다는 문 대통령을 보면 7년전 "근본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했던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8월 9일 조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되고 나서 약 한달간 한국은 ‘조국 블랙홀’에 빠져 있다. 거의 매일 조 후보자와 관련된 각종 의혹이 터져 나오고 검찰은 장관 후보자 청문회 도중에 후보자 부인을 사문서위조 혐의로 기소했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과거 한 장관 후보자는 주택이 3채라는 이유로 자진사퇴했다. 또다른 장관 후보자는 해외 부실 학회에 참석한 사실을 미리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했다. 지금 조 후보자에게 쏟아지는 의혹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의혹에도 그를 임명하겠다는 문 대통령이다. 옳다고 생각한 일은 끝까지 밀어붙이고, 한번 믿은 사람은 끝까지 쓴다는 문 대통령의 성격은 ‘뚝심’이란 말로 포장되지만, 이 정도까지일줄은 몰랐다는 사람이 많다.

조 후보자를 포기하지 않는 문 대통령을 보면서 소득주도성장이나 재벌개혁과 같은 다른 경제공약도 임기가 끝날때까지 고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성적표는 현재 기준으로 보면 낙제점에 가깝다.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위해 지난 2년간 최저임금을 29% 인상 했지만, 소득 하위 20%(1분위)의 월평균 근로소득은 작년 1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6분기 연속 감소했다.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오르자 사정이 어려운 고용주가 아예 일자리를 줄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1분위의 근로소득이 줄자 공적연금과 기초연금을 늘려 소득을 보전해주고 있다. 내년엔 현금성 복지와 노인 일자리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이 더 늘어난다. 내년도 예산은 513조5000억원으로 올해보다 43조9000억원 많이 편성됐는데, 이중 20조6000억원이 보건·복지·노동 예산이다. "경기가 어려운데, 빚이라도 내야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지만, 재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내년도 최저임금 시급이 올해보다 2.87% 많은 8590원으로 결정됐을 때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는 경제계의 우려를 드디어 정부가 받아들이는 것이란 반응이 나왔다. 그러나 조국 후보자를 끝내 임명하겠다는 문 대통령을 보니 소득주도성장 논란쯤이야 무시하고 밀어붙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