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수도 마닐라의 시내 교통은 악명이 높다. 짧은 거리를 운행하는 경전철은 있지만 지하철은 존재하지 않으며 버스는 유명무실하다.
과거 미군이 남기고 간 지프를 개조한 지프니는 미니 승합차처럼 운행하면서 시민들의 발 역할을 대신한다. 지프니는 이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이자 교통체증과 대기 오염의 주범이기도 하다.
때문에 마닐라의 시간은 서울과 다르게 흘러간다. 이 도시를 찾는 여행자라면 도착시간의 정확성에 초연해야 하고, 계획된 일정에 연연해 하면 안 된다.
이들의 낯선 시간 개념을 받아들이고, 시간 감각을 홀가분하게 떨쳐버릴 필요도 있다. 사철 여름인 날씨 때문 만은 아니다. 하루 종일 막히고 예측 불가능한 시내 교통사정이 주원인이다.
마닐라에는 항공사에 따라 세 곳의 공항 터미널이 있는데, 과거 마닐라 공항으로부터 숙소까지 가기 위해서는 특혜를 받은 공항 택시의 바가지 요금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외국인으로서 특별히 다른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일반 택시를 발견했다 해도 미터기 요금이 아닌 요금 흥정 등으로 신경전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런 어려움을 한꺼번에 해결한 것이 ‘그랩’(Grab)이다. 그랩은 싱가포르와 방콕, 마닐라 등 동남아 8개국에서 서비스하고 있기에 일명 ‘동남아시아의 우버’라고 불리는 공유차량 서비스다.
스마트폰에 그랩 애플리케이션을 받아 현 위치와 목적지를 입력하면 주변을 지나가던 기사를 호출해 승차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사전에 운전자의 이름과 차량번호, 이용요금, 예상 거리 등이 스마트폰의 앱 화면에 뜬다.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출장자로서는 운전자와 신경전을 벌일 필요가 없으니 신뢰할 만한 서비스가 아닐 수 없다. 다른 분야는 서울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낙후되어 있지만, 공유경제 서비스는 한국보다 훨씬 앞선 느낌이다. 차량호출, 숙소 이용, 임시 사무실까지 공유 경제가 활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