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R&D)은 길게 보고 밀고 나가는 뚝심이 필요하다."(조홍로 SR테크노팩 대표)
"금형, 사출, 전자 조립 등 자동차 부품 개발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축적해 나갔고 국산화에 성공했다."(유기덕 덕일산업 대표)
"수요처(대기업)가 참여해 실제 어떤 장비가 필요한지 개발 방향을 잡아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한기수 필옵틱스 대표)

일본산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에 성공한 중소기업 3인이 꼽은 비결이다. 조홍로 SR테크노팩 대표는 ‘뚝심’을 강조했다. 새로운 소재·부품 등을 개발하기 위해선 단기가 아닌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수입하던 자동차 전동 시트 스위치 개발에 성공한 덕일산업은 꾸준히 기술력을 쌓아 일본 역수출까지 준비 중이다. 필옵틱스는 대기업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한 후 장비 개발에 나섰다.

◇"R&D는 단기 아닌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국내 1위 즉석밥 용기 제조업체인 SR테크노팩은 2015년 즉석밥 등 포장 용기 뚜껑에 쓰이는 산소차단용 필름 개발에 나섰고 4년 만인 2018년 개발에 성공했다. 현재 이 필름은 SR테크노팩은 물론 국내 즉석밥 용기 제조업체 대부분이 일본에서 전량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산소차단용 필름 개발은 조 대표의 의지와 끈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특히 조 대표는 일본 등 해외에서 핵심 소재를 수입해 제품을 생산하는 단순 가공업만으로는 회사가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조 대표는 대표 직속으로 소재 R&D팀을 두고 팀원들과 상의하면서 R&D에 몰두했다. 4년간 R&D에 약 3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중소기업 입장에선 적지 않은 돈이다. R&D에 실패하면 한순간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

개발을 포기하려고도 했었다. 조 대표는 "R&D 투자 금액은 늘어나고 성과는 잘 나오지 않아 지난해 산소차단용 필름 개발을 포기하려고 했었다"며 "소재·제품 개발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끈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SR테크노팩은 현재 거래처인 국내 식품 회사와 산소차단용 필름 상용화를 테스트 중이고, 올해 안으로 제품 생산에 나설 계획이다.

덕일산업의 경기도 평택 제조공장. 금형, 사출, 전자부품 조립이 가능한 이 공장은 한 달에 자동차 전동 시트 스위치 40만개를 생산한다.

자동차 부품업체 덕일산업은 2003년 국내 완성차업체들이 일본에서 수입하던 자동차 전동 시트 스위치 개발에 성공했다. 유기덕 덕일산업 대표가 1993년 회사를 창업, 사출부터 금형, 전자 부품 조립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며 기술력을 쌓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자동차 전동 시트 스위치는 자동차 시트를 위아래, 앞뒤로 조절하는 스위치이고, 덕일산업이 국내 시장 1위다. 덕일산업은 일본에 역수출도 준비 중이다. 닛산, 마쓰다 등 일본 완성차업체 테스트를 통과했고 내년부터 공급할 예정이다.

현재 덕일산업의 경기도 평택 자동차 부품 제조공장의 한 달 자동차 전동 시트 스위치 생산량은 40만개에 달하고, 이 부품을 제조하는데 필요한 금형, 플라스틱 사출, 전자 부품 조립 등 ‘원스톱 제조’가 가능하다.

유 대표는 "단순 금형 사업만 했다면 현재의 덕일산업은 없었을 것"이라며 "끊임없이 도전하며 새로운 제품을 개발했고 그 결과 국산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수요처와 신뢰 구축…"개발 단계부터 논의"

디스플레이 장비업체 필옵틱스는 수요처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한 후 장비 개발에 나선 것이 주효했다.

필옵틱스는 2009년 일본 기업이 장악하던 노광기(露光器)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노광기는 빛을 쪼여 반도체 웨이퍼나 박막 트랜지스터(TFT) 유리기판에 회로를 그려주는 장비다. 빛을 쪼는 광학 설계 기술이 핵심이다.

하지만 필옵틱스는 노광기를 개발한 후에도 곧바로 판매하지 못했다. 당시 국내 기업들은 일본 노광기를 수입해 사용했고 이 거래 구조를 한 번에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필옵틱스는 국내 기업들이 일본산 노광기 보수·개선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해결해주면서 기회를 노렸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차츰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삼성전기 등에 노광기를 공급할 수 있었다.

경기도 수원 필옵틱스 본사에서 테스트 중인 휴대전화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레이저 커팅 장비.

2012년에는 휴대전화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레이저 커팅 장비를 개발해 상용화했다. 그동안 거래하며 신뢰 관계를 쌓은 삼성디스플레이가 이 장비를 필요로 하는 것을 알았고, 개발에 참여시킨 게 주효했다. 한기수 필옵틱스 대표는 "장비를 실제로 사용할 수요처(대기업)와 함께 개발 방향을 잡아 나갔고 그 결과 상용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장비·부품을 수요처에 공급한 후 최적화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필옵틱스는 삼성디스플레이에 OLED 디스플레이 레이저 커팅 장비를 공급한 후 1년가량 밤낮없이 삼성 측 엔지니어와 함께 현장에서 설비 최적화 작업을 진행했다. 조태형 필옵틱스 전무는 "가동 오류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삼성디스플레이와 필옵틱스 간에 신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작업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