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사건으로 꼽히는 한진해운 사태 3년 만에 원인과 대응책을 분석한 ‘파산 백서’가 발간됐다. 국내 1위‧세계 7위 컨테이너 선사였던 한진해운은 2016년 8월 31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뒤 물류대란을 일으켰고, 결국 이듬해 2월 파산 선고를 받았다.

백서는 한진해운 사태가 경영진 경영 미숙과 정부의 대응 미숙 등이 결합돼 발생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운 전문성이 없는 경영진이 선박 투자에 실패하면서 위기가 시작됐고, 정부도 해운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파산을 결정해 국가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다는 게 백서의 핵심 내용이다.

고려대 해상법연구센터와 한국해운물류학회는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선주협회에서 ‘한진해운 파산 백서 연구 결과 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표는 김인현 고려대 교수와 한종길 성결대 교수가 각각 법률‧제도 분야와 경영‧정책 분야를 나눠 진행했다.

한종길 성결대 교수가 26일 서울 여의도 선주협회에서 ‘한진해운 파산 백서 연구 결과 발표회’에서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경영진 전문성 부족이 선박 투자 실패로 이어져"

이날 한종길 교수는 한진해운이 파산에 이르게 된 가장 큰 경영 원인은 선박 투자에 대한 실패로 이는 선박투자 전략 부재와 경영진 전문성 부족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해운 비전문가들이 회사를 경영하면서 직원들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불분명한 지시가 나오고, 비용절감을 위해 영업 정책에서 중요한 해외 서비스 센터를 통폐합하는 등 각종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2006~2013년 한진해운을 이끌었던 최은영 회장은 남편 조수호 회장이 사망하면서 회장직에 오를 때까지 육아에만 전념했다. 당시 최은영 회장을 보좌한 김영민 전 사장은 금융전문가로 해운을 알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경영권이 한진그룹으로 넘어간 뒤 전문경영인을 맡은 S 전 사장 역시 해운 관련 경험이 거의 없었으며, 당시 해사본부장도 서울대 항공학과를 졸업한 뒤 대한항공에서 근무해왔던 인사였다.

정부 정책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과거 정부가 해운업에 대한 이해 없이 해운선사 부채비율 200%를 강제 적용하면서 선사들이 선박을 매각하고 다시 높은 가격으로 용선(빌려 쓰는 선박)하게 돼 한진해운 파산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또 해운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한진해운을 파산시키면서 조선, 해운, 무역으로 이어지는 국가경제의 고리에 심각한 타격을 줬고, 연관 산업에 다양한 악영향을 미쳤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진해운 컨테이너선.

◇"해운산업 특성 고려하지 않은 정부 대응방식 문제"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발생한 물류대란에 대한 정부 책임론도 제기됐다. 백서에 따르면 해운‧항만 분야 대학교수‧연구원과 해운‧항만 분야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대부분이 한진해운 사태 처리 과정에서 정부 대응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이들은 해운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부 조치로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전문가들은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이후 한진해운이 보유하고 있던 LA항 터미널 지분을 헐값 매각한 것과 한진해운 글로벌 물류네트워크를 포기한 것은 정부의 잘못된 처리방안이라고 지적했다. 한진해운을 우선 정상화한 후 자산을 매각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었지만, 한진해운의 매각 가능한 자산을 모두 헐값으로 매각해 한국 해운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봤다. 전문가들은 한진해운 사태 처리과정에서 정부가 잘한 점이 거의 없다고 평가했다.

해외 전문가들도 정부 정책 실패와 경영진의 비전문성을 지적했다. 양이치 대만 교수는 한진해운이 한국 정부 도움을 받지 못해 파산했다고 봤다. 양이치 교수는 한진해운 사태 당시 한국 정부는 회생보다 화물 하역문제에 집중했기 때문에 한진해운 자산을 제값이 판매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