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정부 예산 510조~514조원 규모될 듯
내년 대규모 적자 발생 불가피…채무비율 39%대 전망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내년 정부지출 규모를 510조원 이상으로 하되 올해 (정부지출 증가율) 9.5%보다는 적다"고 밝혔다.

홍 부총리는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 "지금 경제 상황, 내년 경제활력 회복을 위해 확장재정이 필요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홍 부총리의 발언은 이달 말 국무회의에서 확정된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올해보다 40조원 이상 증가한 510조~514조원 수준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여당 일각에서 요구한 530조원대의 ‘초(超)수퍼예산’까지는 갈 수 없지만 작년 수준의 지출 증가율을 끌고가겠다는 구상을 공식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22일 오후 계속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안보고를 하고 있다.

홍 부총리 발언을 역추산하면 기재부는 내년 정부지출 규모를 510조원에서 514조원 사이에서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정부 예산안이 469조6000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 예산 증가율은 8.6~9.5%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기재부는 내년 예산안 초안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재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다음주초 당정 협의를 거쳐 최종 정부안을 확정한 후 다음달 3일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세종시 관가 안팎에서는 내년 정부 지출 증가율이 대략 9%대에서 최종 확정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2018~2022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는 내년 정부 예산안이 올해보다 7.3% 증가한 504조원 수준으로 계획됐었는데, 이 같은 당초 계획에 비해 6조~10조원 가량 지출 규모가 늘어나게 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확장재정을 폈던 2009년(10.6%)보다는 다소 적지만,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의 확장 예산이다. 지난해(9.5%)에 이어 2년 연속 9%대 지출 증가율이 결정되는 것은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이다.

정부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9%대 지출 증가율을 유지하기로 한 것은 국내외 경제여건이 갈수록 안좋아지기 때문이다. 성장률 저하와 미중 무역분쟁, 일본 수출규제 등으로 인한 하방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확장적 재정운용이 불가피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홍 부총리는 이날 ‘올해 정부 경제성장률 목표치인 2.4~2.5% 달성이 가능하냐’는 박명재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의에 "최근 여건을 고려하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홍 부총리가 정부 성장률 전망치 달성이 어렵다는 시각을 내비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지만, 전례없었던 2년 연속 9%대 지출 증가율 등 가파른 재정지출 속도에 대해서는 우려가 제기된다. 경기 부진으로 세수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지출을 과도하게 늘리게 되면 재정적자도 빠르게 늘어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2018∼2022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내년 통합재정수지는 2015년(2000억 원 적자) 이후 5년 만에 처음으로 5000억 원 적자로 돌아설 계획이다. 그런데 내년 지출 증가율이 당초 계획이었던 7.3%보다 높아지면 적자 전망치도 함께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내년 통합재정수지 적자 폭도 지난해 정부 전망치인 5000억 원보다 상당히 커질 것으로 보인다. 통합재정수지는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3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던 2009년 17조6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이후 흑자 재정을 운용하거나, 적자를 최소화하는 기조로 유지됐다.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에 대해 홍 부총리는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짜놓은 대로 된다면 내년 국가채무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39%대 후반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올해 추가경정예산 기준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37.2%보다는 올라갈 것이지만, 정부가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생각하는 채무비율 40%선은 지켰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