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년간 제철소를 운영하면서 축적한 엄청난 노하우, 조업자의 '놀라운 경험', 이 핵심 경쟁력이 '지능화'돼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지난 9일 찾은 경북 포항의 포스코 2열연공장. 고로(高爐)에서 녹인 쇳물이 두께 25㎝, 길이 7~8m 슬래브(철강 반제품)로 만들어진 뒤 이곳으로 들어왔다. 연간 500만대 승용차를 만들 수 있는 철판을 생산하는 이 공장을 움직이는 건 2층 통합운전실의 12명이 전부였다. 예전엔 50여명이 슬래브 한 개가 들어갈 때마다 산소량·온도 등을 일일이 입력해 작업을 지시했지만 지금은 인공지능(AI)이 대신한다. 포스코 장인(匠人)들과 AI 모델 개발 전문가들이 협력해 철강 원산지, 보관 환경, 용광로 내 온도 등에 따라 달라지는 작업 내용을 AI에 학습시켜 '스마트 제철소'를 만들었다. 30년 이상 갈고 닦은 장인들의 '감(感)'이 AI의 '판단력'으로 거듭났다.

세계경제포럼의 '등대공장'에 선정된 경북 포항의 포스코 2열연공장 통합운전실에서 작업자들이 인공지능(AI) 시스템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곳에선 AI시스템이 공정 단계별로 온도·성분을 실시간 확인·제어한다.

그 결과, 불량률은 3%대에서 1.3%로 낮아지고, 쇳물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제강 조업에 투입되는 원료 사용량은 60%나 줄었다. 정태기 공장장은 이를 "자동화가 아닌 지능화"라고 했다. 김기수 포스코 기술연구원 소장은 "제조업의 국내총생산 기여율이 30%가 넘는 우리나라가 살길은 상상 초월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제조업을 전면 혁신하는 것밖에 없다"고 했다. 포스코는 지난 7월 세계경제포럼(WEF)이 선정하는 '등대공장(Lighthouse Factory·제조업의 미래를 이끌 공장)'에 뽑혔다.

"제조업은 어차피 가장 싼 가격에, 질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포스코를 벤치마킹해 최신 기술의 제철소를 짓고 있는 중국, 지난 20년 넘게 신산업에 매달렸다가 결국 실패한 후 다시 제조업 노하우로 재무장한 일본과 경쟁에서 생존하려면 공장 '지능화'밖에 없습니다."

김기수 포스코 기술연구원 공정엔지니어링 연구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제조업의 국가 GDP 기여율이 30%가 넘는다. 중국 정도 빼고 이런 나라는 드물다. 제조업 생산량으로는 중국, 미국, 일본, 독일 다음의 세계 5위다. '갈수록 쇠락하는' 국가 경제의 부활엔 제조업의 부흥이 필수인 구조란 의미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반대로 간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건비, 경쟁국 대비 최악인 각종 규제와 강성 노조…. 어느 하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해결책 중 하나는 결국 4차 산업혁명에 올라타 상상 초월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전면 혁신이다.

수십년 장인(匠人) 노하우와 AI 결합

3년 전 등대공장 프로젝트를 시작할 무렵, 포스코가 모방할 수 있는 모델은 세상에 없었다. 제철소의 현장은 거칠다. 쇳물이 흘러가면서 엄청난 고온과 고압의 작업이 이어진다. 거칠기 때문에 여기서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도 정확할 수 없다.

'스마트 제철소' 개발 실무 작업을 담당한 포스코 기술연구원 김석 책임연구원은 "결국 알고 보니 데이터를 단순히 모으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섭씨 1500도가 넘는 고로에서 어떤 센서도 온도 측정을 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아무도 내부 정보를 정확히 몰라 수십 년 경험을 가진 작업자의 '감(感)'으로 조업할 뿐이었다. 철광석이 브라질산인지, 호주산인지, 섞여 있는 것인지에 따라 작업 방법이 달라야 생산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야적장에서 비를 맞은 철광석과 일주일 동안 건조한 날씨를 겪은 철광석은 고로에 넣어 온도를 높여야 할 타이밍, 산소 주입량, 원료 추가 주입량도 모두 다르다. 이를 결정하는 건 현장의 베테랑 조업자였다. 이 베테랑의 경험을 활용해 데이터를 찾아내자 공장은 달라졌다.

등대공장 프로젝트에 참여한 김현호 포항제철소 열연부 과장은 "4차 산업혁명의 데이터는 숫자가 아니라 때로는 이미지이고, 심지어 노하우의 영역인 이른바 비정형 데이터들"이라며, "그래서 숙련된 경험자가 필수이고, 이들과 AI 전문가들이 협업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스코의 등대공장 프로젝트는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다. 생산 계획 수립에 12시간 걸리던 것이 1시간으로 줄었고, 용광로의 일일 생산량이 240t 늘었다. 포항 2열연공장의 경우, 2015년 476만t을 압연했는데 지난해 압연량을 511만t으로 늘려, 스마트공장을 도입한 이후 3년 사이 생산량이 10% 정도 늘어났다. 공장 한 곳당 수십만t의 표본을 추출해 철강 품질 관리를 했던 것을 AI가 예측해 예방함으로써 연간 검사 비용도 수억원 절약했다.

코크스 실시간 물류 추적 시스템… 진화하는 프로젝트

'하루 2000만개.'

고로(高爐) 흐름에 매달리는 포스코 기술연구원 김도훈 전문연구원이 하루에 수집하는 데이터다. 이를 이용해 포스코 내 물류 흐름을 혁신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포스코의 스마트공장 프로젝트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제철소에서 쓰이는 고체 연료인 코크스의 흐름을 추적해, 이를 기반으로 제철소 물류를 혁신하는 길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인력의 패러다임도 바뀌었다.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를 없애기만 하는 건 아니다. 근로자의 영역이 작업 수행의 영역이 아니라 관리감독의 영역으로 탈바꿈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포스코 등대공장에선 사용 안 하던 계측 장비, 정비 인력 등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일자리는 이런 곳에서 추가로 만들어진다.

김기수 소장은 "지금 우리는 압축 성장을 하면서 엄청난 노하우를 갖고 있다"면서 "조업자의 '놀라운 경험'이 우리의 핵심 경쟁력이고 이를 통해 혁신적인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4차 산업혁명에 더 적극적으로 매달려야 하는 또 다른 이유였다.

☞등대공장(Lighthouse Factory)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해부터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와 함께 매년 두 차례 선정하고 있는 '혁신 공장'. 빅데이터·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을 활용해 제조업의 미래를 이끌어 가는 공장을 뜻한다. 포스코를 비롯해 지멘스(산업자동화), BMW(자동차), P&G(생활용품), 하이얼(가전) 등 26곳이 선정됐다. 등대공장에 뽑힌 한국 기업은 포스코가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