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매년 R&D(연구개발)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데도 우리 산업에 혁신이 부족한 것은 '구시대적 R&D 체계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여전히 정부가 앞장서서 역할을 배분하는 '하향식(top-down)'으로 연구개발이 이뤄지다 보니, 현장 수요와 동떨어진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기관인 중소기업연구원은 18일 발간한 '중소기업 연구조합 제도를 통한 혁신의 위기 극복' 보고서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1위인 데다, 정부의 R&D 예산도 GDP의 1.13%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며 "하지만 혁신기업 비중은 OECD 국가 중 최하위이고, 기술무역수지도 계속 적자를 보이는 등 성과가 투입에 미치지 못하는 '투자의 함정'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원은 그 원인으로 R&D 체계가 '과거 추격형 성장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꼽았다. 정부의 R&D 투자가 여전히 하향식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연구원은 "정부 R&D 지원 사업 대부분이, 전문연구관리기관이 기획해 공고하면 이를 연구기관이나 기업이 응모하는 방식"이라며 "정부가 아무리 효율적으로 R&D를 관리해도, 연구 자체가 현장 수요와 동떨어지면 '업계가 필요하지 않은 기술을 효율적으로 개발'하는 형국이 될 뿐"이라고 했다.

기술 개발 지원이 대부분 산업계 전반보다 개별 기업에 초점이 맞춰진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기업 단위 지원 때문에 오히려 중소기업들이 단독 기술 개발에 골몰하게 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 R&D의 90%는 이른바 '나 홀로 개발'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연구원은 "이렇게 개발된 개별 기업 특화 기술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연구원은 "R&D 투자 성과 제고에 급급해 투자를 늘리기보다는, 관련 제도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며 "정부·기업·연구기관을 잇는 '중소기업 연구조합' 제도를 도입하면 상향식 연구 과제 선정, 공동 기술 개발 등에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