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시장에서 장·단기 금리 차가 좁혀지는 불안한 움직임은 작년 말부터 감지됐다. 미·중 무역 분쟁과 이에 따른 파급 효과로 세계 경기가 하강하면서 금융시장 곳곳에 '경기 침체(recession) 공포'가 퍼져 나갔다.

독일의 2분기 마이너스 성장과 미국 장·단기 금리 역전에 따른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로 주가가 폭락한 14일(현지 시각)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주식 트레이더가 머리를 감싸쥐고 있다. 이날 다우지수는 3.05%(800.49포인트) 떨어지며 올해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14일(현지 시각) 뉴욕 채권시장에서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2년물 금리를 밑도는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일어나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0여 년 만의 경기 침체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투자은행(IB)인 크레디트스위스에 따르면, 지난 1978년 이후 미 국채 2년물과 10년물 금리 역전 현상은 5번 발생했고, 평균 22개월 후엔 모두 경기 침체로 이어졌다. 가장 최근의 금리 역전은 2005년 12월 발생했고, 역시 2년 뒤엔 리먼브러더스발 글로벌 금융 위기와 경기 침체가 덮쳤다.

◇미국 경제, 제 발등 찍고 있나

최근 세계 경제를 혼자 이끌었던 미국에서마저 경기 둔화 신호가 나타나면서 투자자들을 불안에 빠뜨린 게 금리 역전의 결정타였다. 지난해 미국 경제성장률은 3년 만의 최고치인 2.9%를 기록했고, 실업률은 반세기 만에 최저 수준까지 떨어질 정도로 경기가 좋았다. 이런 자신감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작년 12월 기준금리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올 들어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무역 갈등을 심화시켰고, 시간이 갈수록 미국 경제는 나빠지고 있다. 2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은 2.1% 증가하는 데 그쳐, 1분기(3.1%)보다 1%포인트 낮아졌다. 기업 투자는 2016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섰고, 기업들의 연구개발(R&D)과 설비 투자를 반영하는 비거주용 고정 투자는 0.6% 증가하는 데 그쳐 1분기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BoA(뱅크오브아메리카)의 미셸 마이어 미국 경제 담당 부장은 투자자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미국 장·단기 국채 금리 역전 현상을 경기 침체 신호라고 설명하고 "앞으로 1년 안에 미국 경제가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경기 침체'에 들어갈 확률이 33.3%"라고 전망했다. 또 자동차 판매, 산업 생산 등 주요 경제지표가 이전의 경기 침체 직전 수준까지 떨어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UBS글로벌웰스매니지먼트의 제이슨 드라호 이사는 "적어도 현재 상황은 경고 사인"이라면서 "만약 향후 몇 주 동안 무역 갈등으로 경제지표가 더 안 좋아지고 상황이 악화한다면 연준이 금리를 50bp(0.5%포인트) 내릴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골드만삭스 역시 미국의 올해 4분기 GDP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0%에서 1.8%로 낮췄다.

◇중국·유럽에 홍콩, 아르헨티나까지… 세계 곳곳 파열음

미국과 벌이는 무역 분쟁 당사국인 중국은 7월 광공업 생산이 17년 만에 가장 낮은 증가율(전년 동월 대비 4.8%)을 기록하는 등 경기 둔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이미 2분기 경제성장률이 27년 만에 최저 수준인 6.2%를 기록한 데다, 앞으로 상황이 더 나빠질 일만 남았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유럽 경제를 이끄는 독일도 심상치 않다. 독일은 2분기 GDP가 전 분기 대비 0.1% 감소했다. 미국과 중국 수출에 크게 의지하는 독일이 미·중 무역 전쟁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6월 수출이 전달보다 0.1% 감소했고, 6월 산업 생산도 전월 대비 1.5% 감소하며 10년 만에 최악을 기록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금융 위기 직후 막 회복하던 시기의 독일과 현재 상황이 같아졌다"고 했다.

아무런 합의 없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이 커진 영국은 2분기 GDP가 전 분기 대비 0.2% 감소하며 7년 만에 역(逆)성장했다. 2분기 제조업도 전 분기 대비 2.3% 감소하며 2009년 1분기 이후 가장 큰 하락 폭을 보였다. 이탈리아는 집권 연립정부 해체와 조기 총선 국면에 들어가는 정치 혼란에 빠지면서 디폴트(채무 불이행)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여기에 아시아 금융 허브인 홍콩의 시위 사태와 아르헨티나 정국 불안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 등도 세계적 경기 침체 공포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