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이 어려워 높은 수익률을 올리기 어려울수록 세금을 한 푼이라도 아껴 세후(稅後) 수익률을 높이는 게 좋다. 주식이나 채권 가치는 한 번 떨어지더라도 다시 올라올지 모르지만, 이미 내 계좌에서 빠져나간 세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재테크족 사이에서는 돈 많이 버는 방법만큼이나 세금을 아끼는 방법이 관심사다.

하지만 요즘은 세금 혜택을 주는 절세 금융 상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만큼 세금 아끼기도 어려워졌는데, 정부는 이달 초 발표한 내년 세법 개정안에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연금저축, 퇴직연금 등 '절세 3총사'에 혜택을 더 주겠다고 했다. 은퇴를 앞둔 중장년층이 노후 대비를 하도록 돕겠다는 취지다. 투자자 입장에선 노후 대비와 절세의 기회가 동시에 열린 셈이다.

50대가 연금 계좌에 돈 넣으면 1년에 최대 135만원 돌려준다

올해 세법 개정안은 사적(私的) 연금을 활용한 노후 대비를 유도하기 위해 관련 상품의 세제 혜택을 늘렸다. 연금저축은 매년 최대 1800만원까지 납입할 수 있는데, 이 가운데 소득에 따라 300만~400만원에 대해 세액공제(12~ 15%) 혜택을 준다. 내 연금계좌에 저축만 해도 연말정산 때 10% 넘게 세금을 되돌려준다는 말이다. 물론 연금 계좌에 5년 이상 납입하고, 모아둔 돈을 55세 이후에 연금 형식으로 연간 인출 한도(1200만원) 이내에서 쪼개서 받아 가야 돌려받은 세금을 토해내지 않는다. 연금저축 가입자는 젊어서는 계좌에 넣는 돈에 대해 세액공제 혜택을 받고, 나이 들어서는 낮은 세율의 연금소득세(3.3~5.5%)만 내면 된다.

지금까지 연금 납입액 가운데 세액공제 대상이 되는 금액은 최대 400만원, 개인형 퇴직연금(IRP)까지 합쳐도 700만원을 넘기지 못했다. 그래서 긴 노후를 연금으로 대비하려는 사람들 사이에선 세금 혜택이 너무 적다는 목소리가 컸다. 정부는 이런 목소리를 감안해 내년 세제 개편안에서 '만 50세 이상 가입자'에 대해 연금저축 세액공제 한도를 600만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IRP와 합치면 최대 900만원까지 세액 공제 혜택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혜택은 3년간 한시 적용하기로 했고, 연봉(급여액) 1억2000만원(종합소득액 1억원) 이하인 사람만 해당한다.

예컨대 연 소득 5000만원인 55세 A씨가 매년 연금저축 계좌에 600만원, IRP 계좌에 300만원씩 넣었다고 해보자. 지금까지는 이 가운데 700만원만 세액공제 대상이 됐다. 급여액 5500만원(종합소득액 4000만원) 아래인 A씨에게는 세액 공제율 15%가 적용되고, 연말정산 때 105만원을 돌려받았다. 내년 1월 1일부터는 세액공제 한도가 늘어나면서 900만원 전체가 세액공제 대상으로 포함된다. 돌려받는 세금이 최대 135만원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연금 많이 못 모았다면 만기 ISA→연금 전환 고려해야

연금저축에 모아둔 돈이 얼마 없다면 만기가 다가오는 ISA 계좌에 든 돈을 연금저축 계좌로 옮기는 방법도 생각해볼 만하다. ISA는 하나의 계좌에서 예·적금과 펀드, ELS(주가연계증권), ETF(상장지수펀드) 등 다양한 금융 상품을 투자할 수 있는 소위 '만능 통장'이다. ISA 계좌에 든 모든 금융 상품에서 발생한 순이익(수익-손실) 중 연 200만~400만원에 대해서는 비과세 혜택이 주어진다. 이 한도를 넘는 순이익에 대해서도 9.9%의 세율로 저율 분리 과세한다. 가입 기간은 소득에 따라 3~5년이다.

여태까지는 ISA 계좌가 만기가 되면 일반 계좌에 돈을 넣어야 했다. 그런데 정부는 내년부터 ISA 계좌에 든 돈을 연금저축 계좌로 전환하는 걸 허용해주기로 했다. 이렇게 전환하는 금액은 연금저축 연간 납입 한도액(1800만원)과 별개다. 예컨대 ISA 만기 계좌에 든 2000만원을 연금 저축 계좌로 옮긴다면, 한 해에 최대 3800만원까지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ISA에서 연금저축으로 전환하는 금액 가운데 10%(최대 300만원)에 대해서는 세액공제 혜택도 주어진다. 예컨대 연봉 5500만원 이하 B씨가 만기 ISA 계좌에 든 돈 3000만원을 연금저축 계좌로 넣는다면, 전환액 10%인 300만원은 세액공제(15%) 대상이 된다. 일반 계좌로 넣을 때보다 최대 45만원까지 이득을 볼 수 있다.

◇퇴직연금 10년 넘게 나눠 받으면 세금 추가 10%p 더 깎아준다

연금을 꼬박꼬박 잘 모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나중에 노후에는 세금을 아끼면서 잘 타는 게 중요하다. 예컨대 연금을 연간 1200만원인 인출 한도 내에서 탄다면 3.3~5.5%의 연금 소득세만 내면 된다. 일반 금융 상품에서 나오는 수익에 대해 15.4%씩 세금을 내는 것보다 이득이다. 반면 연금저축 등 사적연금에서 받는 연금 소득이 연간 1200만원을 넘는 순간 종합소득세 과세 대상이 된다. 세율이 6.6~44%에 달하는 종합소득세에 합산 과세될 수 있다는 것이다.

퇴직연금은 어떨까. 퇴직연금은 직장인 때 회사가 쌓아준 돈, 본인이 추가로 낸 돈이나 운용 수익으로 나뉜다. 만약 퇴직금 형식으로 일시금으로 타거나, 퇴직연금을 중도에 해지하면 고율의 세금을 물린다. 회사 측 부담금에는 6~42%의 퇴직소득세, 본인의 추가 납입금과 운용 수익에는 기타 소득세(16.5%)를 내야 한다. 반면 만 55세 이후 연금 형식으로 쪼개서 타게 되면 국가가 세금을 깎아 준다. 회사 측 부담금에는 세금이 30% 감면돼 퇴직소득세의 70%를 낸다. 본인이 낸 돈이나 운용 수익에는 3.3~5.5%의 연금 소득세만 내면 된다.

정부는 세제 개편안을 통해 내년부터 퇴직연금을 10년 이상 오랫동안 쪼개서 받으면 세금을 추가로 더 낮춰주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금까지 연금 형식으로 퇴직금을 타면, 회사 측이 낸 돈에 대해선 퇴직소득세의 30%만 감면해줬다. 그런데 앞으로는 연금 수령 기간이 10년을 넘어선다면 퇴직소득세의 40%를 깎아주기로 했다. 세금 부담이 10%포인트 추가로 낮아지는 셈이다.

이는 2017년 기준 퇴직연금을 수령한 사람 가운데 98.6%가 일시금으로 탈 정도로, 퇴직연금이 본래의 기능을 못 한다는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세금을 깎아줄 테니 대신 장기간 나눠서 받아 노후 생활의 안정성을 높이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