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보험업계가 동반 '실적 부진 쇼크'에 빠졌다. 주요 손보사 순이익이 줄줄이 10~30%씩 급감했다. 업계에서는 자동차·실손보험의 적자 폭이 커진 걸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다. 준(準)공공재로 취급받는 이 상품들의 보험료를 쉽게 못 올리다 보니 결국 '팔면 팔수록 손해인 상품'이 됐다는 것이다. 실적 악화로 인해 대표적인 '경기 방어주'로 꼽히던 보험주(株) 역시 연일 52주 최저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주요 손보사 상반기 순익 급감

1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업계 '맏형'인 삼성화재의 올해 상반기(1~6월) 당기 순이익은 4261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36% 급감했다. 지난해 상반기에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해 거둔 이익에 따른 기저 효과를 빼고 계산하더라도 22.3%나 낮아졌다. 업계 2위를 놓고 경쟁하고 있는 DB손해보험과 현대해상의 상반기 순이익도 각각 31.3%, 36.1% 급감했다. KB손해보험 역시 11.6% 줄었다. 반면 메리츠화재는 상반기 순이익이 1361억원으로 전년 대비 3.1% 늘었다. 주요 손보사 중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하며 선방했다. 메리츠화재 관계자는 "자동차보험 대신 다른 상품에 주력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통했고 운용자산 이익률도 증가했다"고 했다.

원래 보험주는 경기를 타지 않아 '경기 방어주'로 꼽히곤 했다. 그러나 실적 부진 앞에 장사 없듯, 주요 보험주 주가도 맥을 못 추고 있다. '대장주' 삼성화재의 주가는 실적 발표(9일) 이후인 지난 12일에만 6.3% 떨어졌고 13일에도 2.18% 하락했다. 13개 상장 보험사 주가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 'KODEX 보험'의 주가는 3개월 전 7435원에서 13일 5865원으로 21.1% 하락했다.

◇팔수록 손해 보는 車·실손보험이 주범

업계에서는 실적 악화의 원흉으로 자동차보험과 실손보험을 꼽고 있다. 두 보험은 국민 대다수가 가입하는 '국민 보험'으로 취급된다는 게 공통점이다. 그러다 보니 쉽사리 보험료를 높이기 어렵다. 정부가 암묵적인 가격 통제에 나선다는 말도 나온다. 결국 자동차·실손보험 적자를 다른 보험 상품 이익으로 메우는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올해 상반기 주요 5대 보험사(삼성·DB·현대·KB·메리츠)의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84.7~87.1%로 잠정 집계됐다. 손해율은 고객에게 받은 보험료 가운데 보험금으로 돌려준 금액의 비율이다. 가입자에게 100원 받아 85~87원을 보험금으로 지급했다는 뜻이다. 통상 보험사는 인건비·마케팅비 등으로 보험료 20% 안팎 정도를 쓰기 때문에, 손해율이 80%를 넘기면 적자 상품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80%를 밑도는 회사는 단 한 곳도 없는 것이다. 실손보험 역시 의료 이용량이 늘어나면서 손해율이 치솟고 있다. 주요 손보사의 실손보험 손해율은 115.6~147.4%에 달한다. 보험료 100원을 받았는데 최대 147원까지 보험금으로 내줬다는 것이다. 실손보험 손해율은 작년보다 5~9.3%포인트 더 증가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특정 회사만 손해율이 유독 높다면 그 회사 탓이겠지만, 업계 전체가 비슷한 문제를 겪는다면 상품 설계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래서 보험사 실적을 끌어올리는 방법은 자동차·실손보험을 '덜' 파는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실제 메리츠화재는 손해율이 높은 자동차보험 판매를 줄이고 암보험 등 장기인(人) 보험에 집중하는 전략을 펴 수익성을 높였다. 한 대형 손보사 관계자는 "우리도 자동차·실손보험을 안 팔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다"면서 "그러나 회사 이미지와 정부 눈치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일부 보험사는 실손·자동차보험 단독으로는 최대한 안 팔고, 수익이 나는 다른 상품과 '끼워팔기'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업계에서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자동차·실손보험 보험료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