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본점에 근무하는 김모(43) 차장 컴퓨터는 오전 8시 50분에 켜지고 오후 6시 10분에 정확히 꺼진다. 급한 일이 남은 날엔 '시간 외 근무'를 등록한 뒤 컴퓨터를 다시 켜거나 남은 업무를 집에 싸들고 갈 때도 있지만, 눈치 보며 하릴없이 앉아 있는 날은 전보다 확실히 줄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부근 직장에 다니는 권모(40)씨는 2년 전부터 근무시간을 아이들 등하교 시간에 맞춰 오전 8시 출근~오후 5시 퇴근으로 조정했다. 권씨는 "오후 5시에는 지하철이 여유가 있는 편인데, 퇴근이 조금 늦어져 오후 6시가 가까워져 오면 지하철 타려는 승객들이 몰려 플랫폼이 매우 혼잡하다"고 했다.

서울 직장인들의 출근시간은 지난 10년간 큰 차이가 없는데 오후 7시 이전에 퇴근한 사람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 숫자로 확인됐다. 12일 KEB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서울교통공사와 한국철도공사·서울시교통카드시스템 등에서 2008년 29억건, 2018년 31억건의 시간대별 지하철 탑승 기록을 받아 분석한 결과다. 다만 직장 소재지가 강남인지, 가산·구로 디지털단지 인근인지, 도심인지 등에 따라선 출퇴근 패턴에 미세한 차이가 있었다.

◇지하철 탑승 시간으로 확인된 워라밸

광화문, 을지로입구, 시청 등 도심권 지하철역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직장인의 77.1%는 오전 9시 이전에 출근했다. 10년 전인 2008년과 비교할 때 별 차이가 없었다. 반면 퇴근시간은 좀 빨라졌다. 2008년엔 저녁 7시 이전에 퇴근한 비율이 54%였는데, 2018년엔 이 비율이 62.8%로 8.8%포인트 높아졌다. 이는 오전 5~10시에 해당 지하철역에서 하차한 승객을 '출근'으로, 오후 5~9시에 해당 역에서 승차한 승객을 '퇴근'으로 가정하고 출퇴근 시간대 변화를 분석한 것이다. 연구소는 "도심에 대기업 본사와 공공 기관이 몰려 있어 주 52시간 근무제 같은 근로시간 감축 영향이 뚜렷하게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IT 기업이 밀집한 가산·구로 디지털단지역 등은 다른 지역과 달리 출근시간이 오히려 늦춰졌다. 지난해 오전 9시 이후에 출근한 사람 비율이 28%로 10년 전보다 5.3%포인트 늘었다. IT 기업들의 경우 직원들이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유연근로제를 많이 채택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서울 최대 오피스 권역이자 상업지구인 강남·역삼·선릉 지역은 이런 경향이 더 뚜렷해서 오전 9시 이후 출근자 비중이 지난해 34.7%로 10년 전보다 5.8%포인트 높아졌다. 정훈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기업별로 업무 특성에 따라 다양한 근로시간 운영제도를 도입하는 등 정시 퇴근,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 기조가 지하철 이용 데이터 분석을 통해 계량적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新직장인 지도…강남역 지고 가산디지털단지역 뜨고

출근시간대 유동인구가 향하는 곳, 지하철역별 하차 인원이 몰리는 곳 상위 10군데도 뽑아봤더니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10년 전엔 1위가 강남역(2호선), 2위 선릉역(2호선), 3위 삼성역(2호선), 4위 역삼역(2호선) 등 강남에서 삼성까지 테헤란로 2호선 벨트가 싹쓸이했는데, 지난해엔 이 기조가 깨졌다. 2018년 출근시간대 하차 인원이 가장 많은 역은 가산디지털단지역(1·7호선·구 가리봉역)이었다. 10년 전만 해도 10위권에 이름도 없었던 가산디지털단지역은 인근에 IT(정보기술) 벤처기업 등이 집중적으로 입주한 결과 강남역을 밀어내고 직장인이 가장 몰리는 곳이 됐다.

이 밖에 여의도역·시청역도 출근시간대 하차 인원이 많이 몰리는 곳으로 순위가 올라갔다. 반면 강남역·역삼역·삼성역은 순위가 10년 새 밀려났다. 퇴근시간대 하차 인원이 가장 많은 곳 역시 2008년엔 강남역이었는데 지난해엔 잠실(송파구청)역으로 바뀌었다. 서울 시민은 작년 출근과 퇴근에 하루 평균 1시간8분, 편도 33.9분을 사용하는 것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