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0시 15분쯤 경기 김포에 있는 신세계 SSG닷컴 자동화 물류센터 '네오002'. 푹푹 찌는 열대야에도 이곳 3층 신선식품 작업장은 영상 6.9도로 서늘했다. 털모자와 두툼한 점퍼, 장갑을 낀 작업자 80여명이 잠시 후 벌어질 '새벽 배송' 전쟁을 앞두고 전열(戰列)을 가다듬고 있었다. 새벽 배송은 전날 밤에 온라인으로 주문한 제품을 이튿날 아침까지 문 앞에 가져다주는 배송 방식이다.

9일 오전 1시쯤 경기 김포에 있는 신세계 SSG닷컴 자동화 물류센터 ‘네오002’의 냉동상품 작업장에서 패딩 점퍼로 무장한 직원들이 냉동만두와 냉동새우 같은 제품을 바구니에 담고 있다. 푹푹 찌는 열대야였지만 이곳은 영상 6.9도로 서늘했다.

5분 뒤, 중앙관제시스템이 이날 자정 마감한 주문 정보 4900건을 내려 보냈다. 신선식품 담당 허성규(37) 대리는 "지금부터 오전 3시 안에 출고를 끝내야 오전 6시까지 배송을 마칠 수 있다"고 했다. 2시간 40분 동안 4900건, 즉 2초당 한 건씩 주문 상품을 선별·포장해 배송 트럭에 실어 보내야 한다는 얘기였다.

유통업계 한밤 대소동

국내 새벽 배송 시장이 불붙기 시작하면서 최근 유통업체 물류센터들이 매일 밤 배송 전쟁을 치르고 있다. 새벽 배송 업체들은 대부분 일정 금액 이상 구입해야 무료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주문하는 물품 수도 평균 15종으로 다양하다. 주문 마감 후 배송 커트라인까지 남은 시간은 6~8시간. 이때부터 재고 확인·상품 선별·포장·동선 지정·운반을 마쳐야 한다. 한밤중 대소동이 벌어지는 이유다.

이날 SSG닷컴의 새벽 배송 현장에는 물류센터 작업자 200명, 재고 상품 운반 로봇 322대, 배송박스 출하 로봇 128대, 배송 기사 200명이 동원됐다. 상온식품 담당 전병철(35) 대리는 "새벽 배송을 시작한 지 두 달이 채 안 된 상황이라 주문을 하루 5000건까지만 받고 있다"고 했다. 마켓컬리가 하루 3만~4만건, 쿠팡이 7만건을 처리하는 것과 비교하면 적은 양이다. 오프라인 강자도 새벽 배송에선 '후발 주자'인 셈이다.

새벽배송, 드라이아이스는 필수 - 아이스크림을 새벽 배송하기 위해 물류센터 직원이 드라이아이스를 바구니에 담고 있다.

상온 상품 작업장에 있는 운반 로봇은 재고 바구니 8만개가 적재된 14m 높이 구조물 사이를 초속 3.3m 속도로 종횡무진(縱橫無盡)하며 물건을 실어날랐다. 컨베이어 벨트 위로 RFID(무선인식) 칩이 붙은 바구니가 쉴 새 없이 지나갔다. 작업자들은 불이 들어 온 바구니에 각자 맡은 상품을 담았다.

오전 2시, 배송 선발대인 경기 분당·판교행(行) 트럭이 출발했다. 배송 기사 최희주(50)씨는 "도로가 뻥 뚫리는 시간이라 김포에서 분당까지 30~4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SSG닷컴 최우정 대표는 "새벽 배송의 효율은 결국 '상품 출하 속도'가 좌우한다"며 "드론이나 자율주행차량 같은 획기적 배송 수단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심야 교통 상황은 모든 배송업체에 똑같이 주어진 조건"이라고 했다.

이날 배송 트럭 한 대가 오전 6시까지 처리한 주문은 25건이었다.

물류 혁신 없이는 '막노동' 배송

유통업계는 2015년 신선식품 새벽 배송을 선보인 마켓컬리를 통해 '새벽 배송 수요'를 읽었다. 이후 온·오프라인, 대기업·스타트업을 가리지 않고 이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새벽 배송 시장은 올해 8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파른 성장세에도 새벽 배송 업체들은 여전히 고심 중이다. 갑자기 대량 주문이 쏟아질 때 고른 속도로 결품(품절)·오류 없이 상품을 출하시켜야 하는 숙제를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물류 혁신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새벽 배송은 작업자의 노동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숙련된 작업자라도 사람이 뛰어다니며 물건을 선별·포장하는 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지금은 새벽 2시 40분 - 택배 기사가 9일 오전 2시 40분 서울 송파구 잠실의 한 오피스텔 앞에 새벽 배송 상품을 내려놓고 있다. 이 상품은 40여분 전 물류창고에서 출발했다.

지난 5월 서울 장지동 마켓컬리 물류센터에서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했던 대학생 김모(24)씨의 경험담은 생생하다. "요즘 알바 사이트에 심야 물류센터 구인광고가 엄청 뜬다. 오후 3시 30분부터 다음 날 0시 30분까지 일하는 조건으로 현장에 투입됐다. 그런데 밤 11시쯤부터 물량이 쏟아지면서 '혼란'이 시작됐다. 업체에서 수당을 얹어줄 테니 오전 2시까지 추가 근무를 해달라고 했다. 막판 3시간은 주문량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버거웠다. 결국 작업자 대부분이 상품 검수를 건너뛰고 박스를 밀봉했다. 요즘도 '○월 ○일 근무자 모집한다'는 문자가 계속 온다." '리테일 테크의 선두 주자'라는 기대와 '사람 혹사시키는 대표 업종'이란 우려 사이에 새벽 배송 업체가 서 있는 것이다.

승자 독식을 위한 배송 치킨게임

새벽 배송은 초저가 할인 정책과 함께 유통업체를 적자 늪에 빠뜨리는 주범으로 손꼽힌다. SSG닷컴의 무료 배송 액수인 4만원을 기준으로 배송 건수(5000건)를 곱하면 하루 매출은 2억원에 불과하다. 물류센터 직원 200명의 인건비, 배송기사 200명 운임비, 마케팅비, 자동화 시설 유지비 등을 따지면 '팔면 팔수록 손해 보는 장사'인 셈이다.

실제로 지난해 쿠팡은 매출 4조4228억원, 영업손실 1조970억원을 기록했고, 마켓컬리도 매출 1571억원, 영업손실 337억원을 냈다. 이마트 역시 올해 2분기 매출 4조5810억원, 영업손실 299억원으로 사상 첫 적자를 냈다. 유통업계에서는 새벽 배송 사업이 당분간 성장성은 뛰어나도, 수익성은 적자인 상황이 계속 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럼에도 업계가 전쟁에 나서는 것은 소비자가 새벽 배송을 원하기 때문이다. 새벽 배송의 타깃층은 서울·수도권 거주 맞벌이 부부·1인 가구다. 쿠팡 관계자는 "소비 트렌드에 민감하고 구매력이 높은 이들을 충성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어떻게든 새벽 수요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했다.

박주영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지역·상권을 초월하는 이커머스 시장은 지배적 사업자가 등장하면 판도가 쉽게 뒤집히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며 "'치킨게임'에서 물러서지 않는 것은 최후의 '승자 독식'을 꿈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