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의 후속 조치인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 시행 세칙을 발표했지만, 우리 업계의 혼란은 오히려 더 커졌다. 애초 예상과 달리 일본 경제산업성이 개별 허가 품목을 따로 지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 건건이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하는 품목이 여럿 지정되는 상황은 피했지만, 불확실성은 더 커졌다. '일본 정부가 협상 여지를 남긴 것 아니냐'는 낙관론부터 '일본이 필요에 따라 한국에 대한 소재 부품 공급의 목줄을 쥐겠다는 의도'라는 등 분분한 해석이 나왔다.

7일 서울 강남구 국가청정생산지원센터 회의실에서 열린 '일본 수출 규제 관련 업계 설명회'에 참석한 기업인들이 자료에 메모를 하며 심각한 표정으로 설명을 듣고 있다.

일본 정부가 지난 5일 삼성전자 중국 법인에 불화수소 수출을 허가해 준 사실이 알려지면서 혼란은 가중됐다. 일본은 지난달부터 불화수소의 한국 수출에 대해서는 일절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지만, 중국 내 한국 기업에 대해서는 허가를 내준 것이다. 이를 놓고 '일본이 유화적 제스처를 썼다'는 해석도 나왔으나, '일본의 유화적 신호는 삼성 등 한국 기업이 아닌 중국을 향한 것'이란 분석이 엇갈려 나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날 "수출 규제 조치가 시행되기 전인 6월 18일 일본 수출 기업이 제출한 (수출 허가) 서류에 대해 7주 만인 5일 일본 정부가 허가했다"며 "통상 수출 허가 신청에서 승인까지 6~7주 걸리는데 이번에도 종전처럼 정상적으로 허가가 난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西安)에서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생산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D램을 생산하는 중국 우시(無錫) 공장에 불화수소가 정상적으로 입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에 대한 수출은 여전히 막혀 있다는 점에서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로 볼 수는 없다"고 했다.

◇日 조치에 우리 기업 불확실성 커져

7일 일본 정부가 발행한 관보. '수출무역관리령 일부를 개정해 별표 3에서 대한민국을 삭제한다'(사진의 붉은색 테두리)고 설명돼 있다. 별표3은 화이트국 목록을 가리킨다.

일본 정부는 이날 한국에 대한 우회 수출도 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이날 "향후 한국 수출에 대해 우회 수출과 목적 외 전용(轉用) 등에 대해 엄격하게 대처할 예정임에 따라 대한(對韓) 수출 기업들은 최종 수요자와 최종 용도 등의 확인에 만전을 기할 것"을 요구했다. 우리 중소기업들 사이에선 일본 수출 규제 후 우회 수입도 검토해왔으나, 일본이 원천 봉쇄한 것이다.

일본 정부가 이날 발표한 모호한 시행 세칙에 대해서도 업계에선 '불확실성이 오히려 더 커졌다'는 반응이 나왔다. 4대 그룹 관계자는 "일본산 수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비용이 더 들더라도 다른 공급 업체를 찾아볼 텐데,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이 됐다"며 "기업 처지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게 바로 불확실성"이라고 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폭풍우가 몰아치기 직전, 태풍의 눈에 갇힌 느낌"이라고 말했다.

◇기업들, 정부에 "빨리 해결해달라"

정부는 '일본 조치를 예상하고 준비하고 있었다'고 해왔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6일 국회 답변에서 "우리 정부가 '전혀 준비돼 있지 않다'고 단정하는 것은 국익 차원에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인들의 정부 대처에 대한 불만은 커지고 있다. 7일 산자부 산하 전략물자관리원과 무역협회가 주관해 열린 정밀 화학, 뿌리 산업 대상 일본 수출 규제 설명회에선 우리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는 질문이 많았다.

화학 업체 관계자는 본지 기자와 만나 "일본의 수출 규제는 지금 당장 일어나는 상황이라 언제 공장을 멈출지 모른다"며 "국산화를 하겠다고 해도 그게 하루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고…"라고 한탄했다. 정보 부족으로 기초적 설명만 하는 정부 관계자를 향해 한 기업인은 "우리 같은 뿌리 산업(주조·금형 등 산업의 기초가 되는 부문) 대부분은 업체가 영세해 이런 설명회에 참가하기도 힘든데, 일반적 내용만 설명할 거면 그냥 자료를 만들어 나눠 주라"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정부에 조속한 해결책 모색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한 업체 관계자는 "우리와 거래하는 일본 업체가 '당신들이랑 계속 거래하고 싶은데 우리 정부 눈치가 보여서 거래처를 바꿔야 한다'고 하더라"며 "이번 사태의 본질은 한·일 정부 간 감정적 다툼이니 빨리 해결해 달라"고 했다. 또 다른 기업인은 "우리 정부도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외교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 외교적 해결 경로가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 관계자는 당황한 듯 "설명회를 이만 마치겠다"며 급히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