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오후 경기 판교 에스오에스랩(SOS LAB) 연구소. 차 지붕 위에 주먹만 한 크기의 까만색 박스를 단 흰색 쏘렌토가 주차장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차 앞에 사람이 있을 땐 차가 멈췄고, 사람이 지나간 뒤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 지붕의 까만색 박스는 자율주행차의 핵심 중 핵심인 '라이다(LiDAR·맨 위 사진)'이다. 쉽게 말해 자율주행차의 '눈(目)'이다. 차가 자율주행하려면 컴퓨터가 주변 환경을 상시 완벽하게 인식해야 한다. 라이다는 레이저를 이용해 악천후에서도 빠르게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입체 지도'를 만든다. 이 지도가 있어야 컴퓨터가 달릴지 멈출지를 판단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에스오에스랩이 개발한 라이다는 글로벌 선두 업체 수준의 인식률을 보이면서도 제품 크기가 작아 차 지붕이 아닌 앞쪽 범퍼에 내장하는 것이 가능해 매력적이다.

자율주행차의 시대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강한 자율주행차 기업과 이를 뒷받침하는 강한 부품 업체가 있어야 한다. 에스오에스랩을 비롯, 한국의 여러 중소 업체들이 자율주행차의 '핵심 부품'으로 불리는 라이다와 카메라, 그리고 인공지능(AI) 개발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라이다를 포함한 자율주행 센서 시장은 2020년 18조원, 2030년엔 35조원까지 커질 전망이다.

자율주행 기술 국산화 나선 강소기업들

올 초 에스오에스랩은 세계 최대 전자박람회인 CES에 참가, 한 시장 조사 기업으로부터 '글로벌 톱 5 라이다' 스타트업으로 선정됐다. 최근엔 신용보증기금의 '제1기 혁신 아이콘'으로 선정돼 최대 100억원의 추가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게 됐다. 2016년 광주과학기술원(GIST) 연구원 4명이 설립한 이 회사의 정지성 대표는 "라이다는 아직 세계 표준 기술이 없어 품질만 좋으면 벨로다인·이노비스 등 시장 선두 업체를 따라잡을 수 있다"면서 "2023년쯤엔 개당 가격을 지금의 5분의 1 수준으로 낮춘 200달러 안팎의 소형 라이다를 양산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국내 부품·기술 기업들이 자율주행차 핵심 부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 에스오에스랩(위)이 개발한 라이다는 차의 주변 상황을 컴퓨터 화면 위에 3D 지도로 표시한다. 정지성 대표 뒤쪽으로 지나가는 차의 모습이 컴퓨터 화면에 노란색으로 인식됐다. PLK가 개발한 카메라 센서는 사람을 인식하면 녹색 사각형으로 화면 위에 표시를 한다. 이 회사 박광일 대표가 뒤쪽 스크린에 녹색 사각형으로 인식된 모습.

PLK는 또 다른 자율주행 핵심 부품인 카메라 센서 국산화에 나선 업체다. 카메라 센서는 레이저로 인식하는 라이다와 달리 렌즈를 통해 주변 환경을 인식해 색깔까지 구별할 수 있다. 신호등 감지 등 라이다가 못하는 영역에서 필수 부품이다.

지난달 23일 찾은 분당 PLK 연구소에선 한쪽 벽에 대형 모니터와 카메라가 설치돼 있었다. 사람이 지나가면 화면에 녹색 사각형으로 테두리가 쳐지는데, 화면 위에 다리나 손만 나와도 녹색 사각형 테두리가 쳐졌다. 박광일 PLK 대표는 "신체 전체가 아닌 일부분만 봐도 사람임을 알아차리는 게 현 기술로는 쉽지 않은데, 이를 극복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카메라 센서는 이스라엘 업체인 모빌아이가 세계시장을 독점(점유율 95%)하고 있다. 박 대표는 "2021년쯤엔 모빌아이 수준, 혹은 그 이상의 정확도를 갖춘 카메라 센서를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사내 벤처 1호 기업인 PLK는 2003년부터 자율주행 카메라 개발을 시작했다. 현대·기아차 신형 차량에 적용되고 있는 차선 이탈 방지(LDW) 보조 부품을 처음 양산한 곳도 바로 이 회사다. PLK는 미국·중국의 전기차 업체에 전방 추돌 방지(FCW) 부품을 납품, 지난해 120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박 대표는 "꿈의 크기가 기업의 크기를 결정한다"며 "앞으로 소량 다품종 시대로 가면 기회는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했다.

스트라드비전도 카메라 센서 알고리즘을 개발해 설루션 형태로 중국·독일 등에 납품했다.

넘어야 할 산 높고 험해도 세계로

기술력은 인정받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엔비디아나 구글, 보쉬나 덴소 등 글로벌 최고 수준의 기술, 부품 기업들과 싸워 이겨야 한다.

특히 미국·중국계 기업들의 투자 인력과 자금은 국내 중소기업이 상상할 수 없는 규모다. 정면 대결로는 승산이 없다는 얘기다. PLK와 스트라드비전은 독자 개발한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한 높은 인식률로, 에스오에스랩은 제품 소형화로 차별화해 승부를 보겠다는 계획이다.

선우명호 한양대 교수는 "(부품 분야에서 글로벌 수준이 되는 것은)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산업이 성장할 때 같이 성장한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인 이들이 '큰손' 소비자가 나타날 때까지 버틸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성명호 지능형자동차부품연구원장은 "부품 수요가 충분하게 늘어나려면 앞으로 5년은 더 걸릴 것"이라며 "이 기업들이 조금만 더 버틸 수 있도록 지원하면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에스오에스랩 정 대표는 "1000억원씩 투자받고 시작하는 외국 기업과 싸우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승리할 수 있도록 제대로 한번 뛰어볼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