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당국, 온종일 구두개입·실개입…환율, 보합 마감
시장선 "당국, 원화 약세 버텨낼까…1245원 열어놔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미국 재무부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등 글로벌 환율전쟁이 ‘확전일로’로 치달으면서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 외환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과 한·일 경제전쟁이 겹치면서 원화가 다른 통화에 비해 절하폭이 커지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친 원·달러 환율 상승이 금융시장 불안요인으로 부각되면서 외환당국이 시장에 달러를 매도하는 방식으로 개입을 하고 있지만, 원화 약세로 쏠려있는 시장의 기대감을 진정시키지 못하는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전고점인 1245원선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외 환경 불안감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미국 재무부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며 미중 무역전쟁이 다시 심화되고 있는 6일 오전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스크린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고위 당국자 경고 발언·시장개입에도 환율 불안 지속

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 종가와 동일한 1215.3원에 거래를 마쳤다. 미국 재무부의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 충격으로 오전 9시 개장 직후 1223원까지 치솟은 원·달러 환율을 끌어내리기 위해 외환당국이 하루종일 총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주요 고위 당국자가 잇따라 원화 약세폭 확대에 대한 경고성 발언을 내놓고 외환보유액을 헐어 환율 상승을 막기 위한 개입에 나섰지만, 원·달러 환율이 전날보다 더 오르지 않도록 하는 데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기재부와 한은은 이날 외환시장 안정에 사활을 걸었다. 전날 원·달러 환율 급등이 일본 측 수출규제에 맞대응하고 있는 정부 정책기조에 대한 신뢰도 하락과 경제위기 우려를 촉발시키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기재부는 외환시장 개장 전 방기선 차관보, 김회정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 주재 관계부처 긴급점검회의를 열어 시장안정 의지를 강조했다. 김회정 차관보는 회의 후 "위안화와 과도한 동조화로 (원·달러 환율)변동성 강화가 된 것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으며,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면 선제적·적극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고강도 개입을 예고했다.

한은에서는 이주열 총재가 직접 나섰다. 이 총재는 이날 오전 금융·외환시장상황 점검 회의를 주재하면서 "일본의 수출규제에 더해 미·중 무역분쟁 심화로 불확실성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면서 "시장의 안정, 특히 외환시장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 거래량은 89억6000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날(94억달러)에 이어 이틀 연속 90억달러 안팎의 거래량을 기록했다. 지난 7월 하루 평균 거래량이 60억달러 수준이었는데, 50%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늘어난 거래량 중 10억~20억달러가량을 당국의 개입 물량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날도 외환당국은 원·달러 환율이 1220원을 돌파하자 장 초반부터 달러를 공격적으로 매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개입성 달러 매도 물량이 나오면서 원·달러 환율은 오전 11시 이후부터 전일 종가 아래인 1210원선까지 내려왔지만, 오후 2시 이후부터 하락폭이 줄어 보합선에서 거래를 마쳤다. 한 시중은행 외환달러는 "당국의 개입 물량이 나오면서 1210원선에서 거래가 끝날 것 같았지만, 장 막판 달러를 매수하겠다는 주문이 폭증했다"면서 "아직까지는 원화 약세가 좀 더 진행될 것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6일 원·달러 환율 동향.

◇경제 펀더멘탈 불안…외환당국, 개입 효과 두고 고민

외환시장에서는 중국 위안화와 원화가 엇갈린 행보를 보였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보합으로 끝났지만, 역외 시장에서 거래되는 위안화 환율은 전날 달러 당 7.10위안에서 7.03위안으로 하락했다. 중국 인민은행이 달러 당 위안화 환율을 전날에 비해 0.66% 오른 6.9683위안으로 고시했음에도 시장에서 거래된 환율은 오히려 하락했다. 기본적으로 원화가 위안화 흐름과 동조현상을 보이면서 약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절하폭은 위안화에 비해 더 크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외환당국이 고민스러운 지점은 이 부분이다. 당국이 아무리 강력한 시장 개입을 하더라도 성장률 하락 추세 등 취약해진 경제 펀더멘탈(기초체력)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지 않으면, 외환시장이 쉽게 안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본의 수출 규제에서 촉발된 한·일 경제전쟁은 원화 약세에 대한 불안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일본과의 정면충돌이 한국 경제의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가 원·달러 환율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는 시각이다. 한 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시장 불안을 방치할 수 없기 때문에 외환당국이 시장개입을 계속하고 있지만, 한국 경제 펀더멘탈에 대한 시각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지 않으면 외환보유액을 허비하는 결과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 고민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에도 정부는 시장 개입 중심의 안정화 노력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오는 7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주열 한은 총재, 최종구 금융위원장,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등이 참석하는 긴급 거시경제금융회의를 개최한다. 홍 부총리 취임 후 장관급 거시금융점검회의는 이번이 처음이다. 현 상황을 정부가 엄중히 인식하고, 시장 불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회의 후 원·달러 환율 상승이 진정되지 않으면 강력한 시장 개입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원화 약세 지속될 것…달러당 1245원 열려있어"

시장에서는 당국의 개입이 원화의 약세 요인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환율의 상단을 1245원까지 열어놓고 있다. 이는 2016년 2월 20일 기록한 환율의 전고점(1245.3원)을 감안한 수준이다. 이날 원·달러 환율의 장중 고점은 1223.0원으로 2016년 3월 3일(1227.0원) 이후 3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미·중 갈등이 환율 전쟁으로 번지고, 일본의 수출 규제까지 강도를 더해가는 가운데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에 대한 우려가 원화 약세를 부추길 것으로 본 것이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미·중과 한·일 무역긴장 속에서 우리나라의 경쟁력 상실에 대한 우려가 심화될 것"이라며 "금융시장 위험기피 심화, 위안화 약세로 당분간 상승 압력이 이어지면서 2016년 2월 고점인 1245.3원이 저항선이 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이날 외환당국의 저항선이 1220원인 것으로 파악됐지만 결국 원·달러 환율을 움직이는 건 위안화 환율"이라며 "원·달러 환율이 보합수준에서 멈춘 것이 숨고르기라면, 향후 환율 상단은 전고점인 1245원선까지는 열어둬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