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가치가 빠르게 하락하면서 업종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지난 5일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17.3원(1.4%) 상승한 1215.3원을 기록했다.(달러화 강세, 원화 약세) 지난 2016년 3월 9일 1216.20원을 기록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6일 달러 대비 원화 환율도 장중 하락했지만, 결국 전날과 변동 없이 마감했다.

울산항에서 수출을 앞두고 선적 대기 중인 현대차 차량.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원재료를 수입하는 업종은 비용 부담이 커진다. 해외에서 달러로 원유를 매입하는 정유업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외화부채 비중이 큰 항공사도 달러 가치가 오르고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재무위험이 늘어난다.

반면 자동차와 정보기술(IT)·전자 등 수출 비중이 큰 업종은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수익성이 개선될 가능성이 커진다.

◇현대·기아차, 하반기에도 ‘원화 약세 효과’ 따른 실적 개선 기대

현대·기아차는 올해 상반기 실적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눈에 띄게 개선됐다. 현대자동차는 상반기 영업이익이 2조626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26.4% 늘었고 기아자동차는 71.3% 급증한 1조127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두 회사가 상반기 실적 개선에 성공한 데는 환율 효과가 컸다. 지난해 상반기에 1100원을 밑돌았던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올해 들어 1190원을 넘어서면서 해외 판매를 통한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다.

최근 미국에서 팰리세이드의 판매를 시작한 현대차는 달러화 강세, 원화 약세로 수출을 통해 얻는 이익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의 원화 약세 흐름이 이어지면 현대·기아차는 하반기에도 환율 효과에 따른 실적 개선을 기대할 만하다. 특히 북미 시장에서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팰리세이드 판매를 시작한 현대차는 원화 약세로 신차 출시를 통한 이익이 기대치를 웃돌 가능성이 커졌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현대차보다 기아차가 원화 약세에 따른 수혜를 더 많이 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기아차는 현대차보다 해외 공장에서 직접 생산하는 비중이 작아 환율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전체 글로벌 판매에서 해외생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대차가 60%에 이르지만, 기아차는 42% 수준으로 절반을 밑돈다.

◇삼성전자, 반도체 경기둔화 속 원화 약세로 ‘작은 위안’

국내에서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삼성전자(005930)도 실적을 견인하는 ‘쌍두마차’ 격인 반도체·디스플레이 사업부가 원화 약세 수혜를 볼 수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31일 발표한 올해 2분기 실적 발표에서 "환율 변동으로 부품사업 중심으로 5000억원 수준의 긍정적인 수익개선 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주력 수익원인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인한 반도체 불황이 계속되고 있지만, 환율 효과로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는 증권가 분석도 나왔다.

삼성전자 화성캠퍼스에 위치한 반도체 생산 라인 내 클린룸 전경

삼성전자 관계자는 그러나 "현재 미·중, 한·일 경제전쟁이 시장은 물론 공급망을 흔드는 비상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에 경영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며 "원화 가치 하락으로 어느 정도 긍정적인 환율효과를 보더라도 최근 위기를 상쇄하기엔 미미할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066570)는 환율의 단기적인 변동이 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글로벌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외환자산·외화부채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LG전자 관계자는 "현재 결제 통화는 달러화뿐 아니라 유로화, 일본 엔화, 영국 파운드화 등 35개가 넘기 때문에 모두 한쪽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면 환율 변화에 따른 우려가 크지 않다"고 전했다.

◇정유업계는 원유 수입 부담 커져…항공사도 외화부채 많아 실적에 악영향

원재료인 원유를 100% 수입하는 정유업계는 원화 가치 하락으로 비상이 걸렸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정유업계는 원유를 수입하고 제품을 만들어 수출도 하지만, 원재료 수입 규모가 더 크기 때문에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크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하락속도가 너무 빨라 환차손에 따른 당기순이익이 감소가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화학업종은 사업 구조에 따라 영향이 다르다. 롯데케미칼(011170), 한화케미칼등은 원료수입과 제품수출의 상쇄효과가 환헤지(위험회피) 기능을 해 영향이 제한적이다. 효성(004800)은 에어백과 타이어코드를 만들 때 원재료를 일부만 수입하는 반면, 판매의 80%는 수출해 환율이 상승하면 일부 수익 확대가 기대된다.

항공사들은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상승해 항공유 수입 부담이 커지고 외화환산부채 손실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여객기.

항공업계도 원화 약세로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늘고 있다. 달러화 가치가 오르면 원유 수입가격 상승으로 항공유 도입 부담이 커지는 데다, 외화부채 비중도 높아 재무 위험도 늘어난다.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이 10원 오를 경우 대한항공은 약 800억원, 아시아나항공은 약 230억원의 외화환산손실을 각각 보는 것으로 추산한다. 최근 1년간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00원 이상 오른 점을 고려하면 산술적으로 대한항공은 8000억원, 아시아나항공은 2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보게 된 셈이다.

이한준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최근 항공사들은 일본여행 불매운동에 따른 일본노선의 수익성 악화와 화물운송 수요의 감소 등 업황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여기에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200원을 돌파하고 엔화에 대한 원화 환율도 1140원을 넘어서면서 경영 부담이 더욱 커지게 됐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