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의 성공에 가려 잠자던 공룡, J뷰티가 깨어났다.'(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중국에서 J뷰티가 K뷰티를 밀어내고 있다.'(중국 징데일리)

중국 시장에서 한국 화장품이 고전하는 가운데, 일본 화장품이 무섭게 질주하고 있다. 한국은 올 들어 중국 수입 화장품 시장 1위 자리를 일본에 빼앗겼다. 국제무역센터(ITC) 조사에서 일본의 대중(對中) 화장품 수출액은 올해 1분기 7억7000만달러(약 9300억원)를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ITC는 세계무역기구(WTO)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공동 운영하는 무역진흥기관이다. ITC 조사에서 2위는 프랑스(7억3000만달러·약 8800억원), 3위가 한국(7억2000만달러·약 8700억원)이었다. 지난해 한국은 프랑스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올 들어 3위로 밀렸고, 줄곧 3위에 머물러 있던 일본이 1위로 올라섰다.

◇자동차처럼 화장품도…중국 시장에서 일본이 한국 자리 꿰차

중국 시장에서 J뷰티 돌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17년부터다. 한국과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갈등으로 인해 중국에서 반한(反韓) 감정이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일본 화장품의 중국 시장 접수는 지난해부터 본격화됐다"면서 "지난해 일본 화장품의 대중 수출액은 전년 대비 80% 성장했고, 올해도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일본 화장품 기업 시세이도는 지난해 연 매출 1조900억엔을 기록하며, 2년 연속 연 매출 1조엔을 돌파했다. 일등 공신은 중국 시장이다. 시세이도의 지난해 중국 매출은 전년 대비 32.3% 성장했고, 올해도 큰 폭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최근 시세이도의 매출과 주가는 1980년대 일본의 경제 호황기를 방불케 할 정도"라고 했다. 시세이도 그룹의 한 임원은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소비자의 수요와 유행을 빠르게 반영하는 K뷰티와 달리 J뷰티는 지속 가능하고 진정성 있는 제품을 선보인다"고 강조했다.

한국 화장품 기업은 고전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지난해 연 매출은 6조782억원으로 전년 대비 1% 증가하는 데 그쳤고, 영업이익(5495억원)은 25% 감소했다. 시세이도 등 일본 화장품 기업들은 중국 시장에서 K뷰티가 주춤하자 제품 가격을 20% 낮추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이에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한국 화장품의 보완·대체재로 일본 화장품이 뜨기 시작했다. 중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과 경쟁 관계에 있던 일본 기업이 반사 이익을 누린 것은 자동차·관광 업계에서도 벌어졌던 현상이다.

◇프리미엄·인디 브랜드로 중국 재탈환 노리는 K뷰티

중국에서 주도권을 잡은 일본은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을 맹추격하고 있다. 지난해 국가별 화장품 수출액 순위에서 한국은 5위(62억9000만달러), 일본은 7위(52억달러)였다. 중국에서의 유행은 동남아시아로도 번지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멜트워터'가 최근 동남아 시장에서의 '소셜미디어 브랜드 인지도'를 조사했더니 J뷰티(58.7%)가 K뷰티(21.9%)를 훨씬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패션 칼럼니스트 황의건씨는 "10년 전만 해도 중국·동남아 시장에서 스킨·로션·크림 등 기초 화장품의 단계별 사용법을 모르는 소비자가 많았지만 요즘은 고급화 바람이 불고 있다"며 "신생 인디 브랜드(독립 브랜드)와 프리미엄 제품이 한국 화장품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소비자의 취향이 오프라인 중저가 로드숍 위주에서 럭셔리·온라인 인디 브랜드 제품으로 이동하면서 K뷰티업계의 전략 수정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사드 악재(惡材)'에도 성장세가 꺾이지 않은 LG생활건강의 경우 럭셔리 전략이 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후·숨·오휘 등 프리미엄 화장품의 스페셜 라인을 출시하며 명품 마케팅에 집중한 LG생활건강은 올 2분기 중국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0% 성장했다. 업계 관계자는 "아모레퍼시픽은 중국에서 이니스프리·에뛰드 같은 중저가 브랜드 이미지가 워낙 강해 명품을 내세운 LG생활건강과 명암(明暗)이 엇갈린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