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해 6월 기획재정부 혁신성장본부라는 신규 조직을 만들었다. 소득주도성장·공정경제와 함께 이번 정부의 3대 경제 기조인 '혁신성장'을 이끌 컨트롤타워였다. 본부장은 고형권 당시 기재부 1차관과 다음(현 카카오) 이재웅 창업자가 공동으로 맡았다. 정부 조직이지만 민간의 혁신 유전자(DNA)를 입히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출범 반년도 안 돼 이재웅 창업자는 "혁신성장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가 무력감이 든다"며 사퇴했다. 승차공유·원격의료 규제와 같은 난제를 하나도 못 푼 것이다.

올 4월 혁신성장본부는 혁신성장추진기획단으로 개편됐다. 단장은 차관이 아닌 국장이 맡았다. 위상이 떨어진 것이다. 민간 본부장 자리는 없어졌다. 눈치가 보였는지, "민간 전문가 5명을 2년짜리 전문 임기제 공무원으로 뽑겠다"고 했다. 그러나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명도 뽑지 못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이젠 완전한 공무원 조직이 됐는데 그곳에 들어가서 혁신을 주장해봐야 먹히겠느냐"고 말했다.

◇부처 간 이견 조율도 안 되고, 기득권 눈치만 보는 관료 조직

정부는 연일 혁신성장을 외치고 있지만, 오히려 공무원 조직이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책임질 일은 피한다'는 관료 조직 특유의 보신주의(保身主義)가 팽배해 규제 철폐는커녕, 부처 간 이견 조율도 제대로 안 되는 데다 각종 이익단체와 같은 기득권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투자지원카라반'이다. 투자지원카라반은 관계 부처 합동으로 산업 현장을 일주일에 한 곳씩 방문해 규제로 인한 애로 사항을 듣고 해소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7월 처음 도입한 뒤 첫 4개월간 12회 차례 전국 산업 현장을 찾았다. 한 달에 세 번꼴이었다. 그러나 5~8개월 차에는 6차례에 그쳤고 9~12개월 차에는 3번으로 줄었다.

규제 샌드박스도 예외는 아니다. 규제 샌드박스는 신제품·신서비스를 출시할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하는 제도다. 가상 화폐를 활용한 해외 송금 스타트업인 모인은 올 초부터 3차례나 과기부에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했다. 하지만 아예 심사 대상에도 오르지 못했다. 기획재정부·법무부·금융위 등에서 "가상 화폐는 자금 세탁 위험과 투기 과열 우려가 있다"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부처 간 업무 영역 갈등이 혁신을 막기도 한다. 정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스마트산단 시범사업이 그런 사례다. 하지만 도입을 발표한 지 11개월째지만 시행은 안 되고 있다. 스마트공장 보급을 맡은 중소벤처기업부와 연구개발(R&D)을 주도하는 산업통상자원부 간 견해차가 있어 세부안이 아직도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주요 부처의 '규제 철폐 수용률'은 이번 정부 들어 더 낮아졌다. 중소기업 옴부즈만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중소기업의 규제 개선 요구 건수는 1611건에서 2018년 2086건으로 늘었다. 옴부즈만은 이런 개선 요구를 각 부처에 전달한다. 부처에서 개선 요구를 수용(일부 수용 포함)한 비율은 같은 기간 39.9%(642건)에서 20.6%(430건)로 급감했다. 옴부즈만 관계자는 "민간인 출신의 중소기업 옴부즈만이 그래도 차관급인데, 직접 주요 부처에 찾아가 규제 해소를 요구해도 담당 부처 공무원이 거절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혁신은 간데없고, 규제 공무원 수만 증가

규제 관련 부처의 공무원 수는 급증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공정위 직원은 694명으로 2년 전인 2016년 말(588명)보다 100명 이상(18% 증가) 늘었다.

같은 기간 환경부는 17.1%, 금융위원회는 11.6%, 고용노동부는 10.8%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국가공무원의 증가율(2.9%)을 훨씬 웃돈다. 규제 담당 공무원이 늘어나면 규제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정확한 수치조차 알 수 없다. 정부가 2015년부터 정부 규제 수를 비공개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규제의 수적 관리 대신 질적 관리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혁신을 외치는 정부에서 오히려 '파킨슨의 법칙'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파킨슨의 법칙은 공무원 숫자는 업무량에 관계없이 조직의 이기심 등에 의해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는 이론이다. 김 교수는 "지난달 국토부가 내놓은 타다·택시업계 상생안은 한국 혁신 산업을 20년 후퇴시킨 망작"이라며 "스타트업의 혁신 모델이 언제든 정부의 판단에 의해 불법이 될 수 있다는 걸 정부 스스로가 입증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