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에 지친 부동산 투자자들이 나라 밖에서 탈출구를 찾고 있다.

수억원짜리 상가나 건물을 살 만한 자금력이 없더라도 해외 주요 도시의 사무용 건물을 사들일 수 있는 상품들이 나오고 있어서다. 최근 해외 부동산 투자자들은 영국·독일 등 서유럽 국가에서 눈을 돌려 동유럽까지 투자망을 넓히는 중이다.

글로벌 부동산컨설팅회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집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유럽 업무용 건물 투자금액은 약 7조233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전체 투자액(6조8390억원)을 뛰어넘었다. 3년 전인 2016년만 해도 유럽 오피스 빌딩에 투자하는 국내 자금은 3조610억원에 그쳤다.

투자처도 다양해지고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가시화하면서 기업들이 런던을 대체할 만한 유럽 내 도시로 이동하는 데다, 국내 투자자들도 해외 부동산시장에서 투자처를 넓힌 결과라는 분석이다. 지난 2017년 말 유럽은행감독청(EBA)과 유럽의약청(EMA) 등 유럽연합(EU) 산하 기관들이 각각 프랑스 파리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한 이후 다국적 기업들은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등으로 유럽 본사를 옮기거나 런던 지사를 축소하는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올해 상반기 국내 금융사가 사들인 프랑스 파리 라데팡스의 사무용 건물 ‘CBX타워’ 전경.

국가별 투자 동향을 보면, 지난해에는 국내 투자자들이 유럽 오피스시장에 쏟은 자금의 48%는 영국을 향했다. 두 번째로 인기가 많은 투자처인 독일의 비중은 20%였다.

올 들어서는 영국의 비중이 절반으로 줄어든 반면, 프랑스의 투자 비중이 58%로 치솟았다. 체코와 오스트리아가 차지하는 비중도 배 이상 늘었다. 올해 상반기 파리 근교 도시인 뇌이쉬르센의 크리스털파크의 업무용 건물이 한화 약 9193억원에 삼성증권에 인수됐고, 하나금융투자도 프랑스 파리의 CBX타워를 약 5087억원에 사들였다.

진원창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리서치팀장은 "지난해까지는 유럽의 관문격인 영국이나 독일 오피스 빌딩에 투자하는 비중이 컸다면, 올 들어서는 프랑스나 체코, 오스트리아, 폴란드 같은 동유럽 투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국내 수익형 부동산의 기대수익률도 낮아지자, 해외 부동산 투자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이 이달 기준금리를 연 1.5%로 0.25%포인트 낮추자, 시중은행들도 앞다퉈 예금상품의 이자율을 인하했다. 웬만한 시중은행의 3년 만기 예금 금리는 연 2%를 넘지 않을 정도다.

대표적인 수익형 부동산에 해당하는 오피스텔의 투자 수익률도 하락 중이다. 부동산114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연 6.34%였던 오피스텔 임대수익률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연 4.98%까지 떨어졌다. 이 기간 오피스텔 입주 물량이 6691실에서 7만4553실로 급증한 데다, 시중 금리보다 높은 수익을 기대하는 투자자들이 몰리며 오피스텔 매매가가 오른 탓이다.

최근 이지스자산운용이 내놓은 유럽 물류센터에 투자하는 펀드도 목표금액인 2300억원을 채웠다. ‘이지스 글로벌 공모 부동산투자신탁 281호’는 프랑스 파리, 영국 브리스톨, 스페인 바르셀로나 물류센터 3곳에 투자하는 펀드다. 미국 온라인 유통기업 아마존에 20년 동안 임대하기로 계약한 물류시설들이다. KB국민은행·우리은행·한국투자증권 등 5개 금융사들이 판매했는데, 일부 지점에서는 불과 몇 분 만에 할당액을 마감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지난달 한국투자신탁운용이 투자자를 모집한 ‘한국투자 도쿄 한조몬 오피스 부동산신탁’과 ‘한국투자 벨기에 코어오피스 부동산 2호’는 각각 일본 도쿄와 벨기에 브뤼셀의 오피스 빌딩에 투자하는 상품인데, 판매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완판됐다.

해외 부동산 펀드는 일반적으로 투자기간을 3~5년으로 잡는다. 해당 도시의 공공기관이나 정부 산하 기관, 대기업 등을 임차인으로 확보한 다음 건물을 사들인다. 첫 2~3년 동안 임대료를 받아 투자자들에게 배당금을 주다가, 청산할 시기가 다가오면 건물을 팔아 투자금을 되돌려주는 식이다. 기대수익률이 연 6~8%로 웬만한 은행 예적금의 서너 배인 데다, 환율 변동에 따라 수익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