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정페이 "기술전쟁 승리 위해 최고 인재 유치"...박사급 신입사원 연봉 공개

"이번 졸업생 연봉이 200만위안(약 3억 4000만원)?" 지난 23일(현지 시각) 중국판 카카오톡 웨이신(微信)에서 확산된 글의 제목이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화웨이(華爲)창업자 런정페이(任正非) 최고경영자(CEO)가 서명한 8명의 박사급 신입사원 연봉이 적힌 내부 문건을 캡처한 기사 링크가 걸렸다.

화웨이가 이공계 박사에겐 최대 3억원 이상, 인문계 박사급 인재에게도 1억5000만원 이상 초봉을 제시하며 글로벌 인재 유치에 나서고 있다. ‘저렴한 인건비로 일군 세계공장’으로 비치던 중국 기업이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고급 인력을 흡수하는 모습이다.

2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중화권 언론에 따르면, 화웨이는 이날 2020년 대졸 신입사원 채용 공고를 발표했다. 화웨이는 채용 공고에서 "우리는 미래의 기술전쟁과 비즈니스 전쟁에서 승리해야한다. 최고의 급여로 최고의 인재를 유치해야 한다. 올해 전세계에서 20~30명의 ‘천재 소년’을 뽑고, 내년부터 더 늘려 우리 팀의 작전능력 구조를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2019년 입사한 박사급 신입사원의 8명의 이름과 연봉을 함께 공개했다.

글로벌 인재 유치에 속도를 내고 있는 중국 최대 스마트폰업체이자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 선전 본사

연봉은 업무마다 다르지만, 최저 89만 6000위안(약 1억5000만원)에서 최대 201만위안(약 3억 4000만원)에 달했다.

화웨이는 리서치·개발, 세일즈, 서비스, 구매, 재무, 법무, 인사, 경영지원 등 8개 분야에서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이공계 엔지니어는 물론 재무·인사·경영지원 등 인문계에서도 ‘억대 연봉’ 박사 신입 사원이 있다는 뜻이다.

내년 1월부터 12월 사이에 중국 대학에서 졸업하는 학생이나 올해 1월부터 내년 12월사이에 해외 대학에서 졸업하는 학생이 채용 대상이다.

화웨이는 앞서 지난 6월 런정페이 CEO가 회의에서 ‘천재 소년’을 전세계에서 올해 20~30명 뽑고, 내년부터 매년 200~300명 채용으로 늘려나가겠다고 밝힌 사실을 공개했다. 당시 중국언론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타깃이 된 화웨이가 생존을 위해 글로벌 인재 유치에 나섰다고 전했다.

글로벌 인재 싹슬이를 위한 전쟁에는 중국 정부도 가세했다. 미⋅중 기술냉전의 격전지가 되고 있는 선전(深圳)을 포함한 중국판 실리콘밸리에서 해외 인재 유치를 위해 최고 개인소득세율을 45%에서 15%로 낮추기로 올해 발표한게 대표적이다. 왕리신(王立新)선전시 부시장은 지난 5월 선전에서 열린 ‘2019 미래 포럼 선전 기술 서밋’에 참석, "웨강아오(粤港澳) 빅베이(大湾区)에서 부족한 외국인재는 15%의 개인소득세율을 적용받을 것"이라며 "100만위안(약 1억7000만원)의 연봉을 받으면 30만위안(약 5100만원)을 덜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2월 청사진이 발표된 웨강아오 빅베이 전략은 주장(珠江) 삼각주에 있는 선전을 비롯해 광저우(广州), 주하이(珠海), 포산(佛山), 중산(中山), 둥관(东莞), 후이저우(惠州), 장먼(江门), 자오칭(肇庆) 등 광둥성(廣東省) 9개 도시와 홍콩⋅마카오를 하나의 경제권역으로 묶는 것이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기업들도 박사급 인력에겐 일반 대졸 신입사원보다 높은 연봉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인문계 박사급 인력은 기업에서 수요가 적고, 이공계보다 낮은 대우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는 이공계 박사급 인력을 ‘책임’ 직급으로 채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사원 연차에 따른 연봉은 함구하고 있지만, 이공계 박사 신입사원의 초임은 세전 6500만~7000만원 사이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최대 50%에 이르는 연말 인센티브 등을 포함하면 총 연봉은 세전 1억원 내외다.

국내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이공계 박사 졸업자가 국내 최대 기업에 입사해도, 화웨이 인문계 박사보다 연봉이 낮은 셈이다. 국내 이공계 박사 신입사원 연봉은 오랜 기간 정체 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대에서 이공계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이모(28)씨는 "국내에서 가장 대우가 좋다는 삼성전자조차 10년 가까이 연봉 상승률이 미미하다"며 "다른 회사들도 자연히 연봉이 동결돼, 우수 인력들은 해외 취업을 선호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글로벌 ICT(정보통신기술) 기업들은 우수 인재 채용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관련 인력은 품귀 현상까지 일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선 졸업 전 연구성과가 우수한 박사학위 소지자에게 수억원의 연봉을 제시하는 일도 흔하다.

연공서열을 유지하던 일본 ICT 기업들도 최근들어선 AI 전공 신입사원에게 연봉 1억원(1000만엔) 이상을 주겠다는 입장이다. 소니 또한 올해 입사하는 대졸 AI 인력 초봉을 최대 20% 인상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 기업들도 AI 분야를 중심으로 우수인재 확보에 열심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6월 AI 분야 권위자인 세바스찬 승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와 다니엘 리 코넬테크 교수를 영입했다. 올해 3월에는 위구연 미국 하버드대 교수를 펠로우로 영입하기도 했다. SK하이닉스도 최근 데이터 사이언스 전문가인 김영한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종신 교수를 수석 연구위원으로 영입했다. LG전자는 인공지능망 전문가인 다린 그라함 박사를 토론토 AI 연구소장으로 선임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학계에서 업적을 쌓은 인물로, 일반적인 박사급 신입사원과는 상황이 다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국내 기업들도 특출난 연구원에겐 수억원의 초봉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공계 특정 분야에서도 극소수에게만 가능한 기회"라며 "실리콘밸리는 물론 중국까지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세계 우수 인재를 빨아들이고 있어, 한국 기업들은 인재 유치전에서 뒤처지는 형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