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5일 세제발전심의위원회를 열고 내년도 세법개정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정부가 이번에 세법을 고치면서 가장 강조한 것이 '경제 활력 회복'이다.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한국 경제 상황을 심각하게 본 것이다. 하지만 개정안에서 기업들의 어깨를 가볍게 해줄 특단의 조치는 보이지 않았다. 기업들의 세 부담을 조금 줄이는 '찔끔 감세(減稅)'에 그쳤다는 평이다. 반면 고소득층과 부동산 관련 세금은 늘렸다.

◇경제 살릴 '깜짝 카드' 없어… 정부는 '감세 기조' 아니라며 펄쩍

세법 개정안을 보면 정부의 경제 활력 회복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이미 나온 것인 데다 새로 발표된 내용도 경기를 부양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먼저 기업이 '생산성 향상 시설'에 투자할 경우 세금 깎아주는 비율을 한시적으로 늘리는 것과 설비투자에 대한 감가상각 기간을 줄여 초기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가속(加速) 상각' 특례를 확대한 것, 올해 말 일몰(日沒)이 돌아오는 생산성 향상 및 안전 시설 투자세액공제를 2년 연장하는 것 등 굵직한 내용은 모두 이달 초 발표한 것들이다. 새로 발표된 내용으로는 위기 지역에 창업한 사업자에게 소득·법인세 감면 기간을 늘려주는 것, 규제자유특구 내 중소·중견기업이 사업용 자산 등에 투자할 경우 투자세액공제율을 확대해주는 것 정도 외에 특별한 게 없다.

이미 발표한 것이라도 기업에 힘이 된다면 다행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8~12일 매출 상위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정부가 이달 초 발표한 '투자 촉진 세제 3종 세트'가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물었는데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답한 기업은 1.7%,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답한 기업은 18.3%에 불과했다. 정부는 대대적인 투자 활력 대책이라고 강조하지만 대기업의 향후 5년간(2020~2024년) 누적 감세액은 2062억원에 불과하다. 기업들은 한경연 조사에서 세법 개정의 최우선 과제로 법인세 인하(37.3%)를 1순위로 꼽았다. 하지만 김병규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법인세율을 낮추는 방안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법인세 인하와 같은 적극적인 대책을 꺼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감세=친기업'이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지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병규 실장은 "투자세액공제율을 올려주는 조치 등이 증세 정책에서 한발 물러난 것이냐"는 질문에 "감세 기조로 돌아섰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표현"이라고 선을 그었다.

◇고소득층, 부동산 관련 증세도

개정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고소득층 증세는 근로소득공제 한도를 만든 것과 기업 임원의 고액 퇴직금에 부과하는 세금을 늘린 것이다. 근로소득공제는 사업자가 쓴 비용을 인정해 매출에서 빼주듯이 직장인도 교통비나 자기 계발 비용처럼 근로소득을 얻기 위해 투입한 돈이 있다고 보고 총급여(세전 연봉과 비슷한 개념)를 토대로 일정 비율을 곱한 값을 전체 근로소득에서 제외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세금 내는 기준이 되는 소득이 줄어 세금을 덜 낼 수 있다. 기존에는 공제액에 한도가 없었으나 이번에 '2000만원'이라는 한도를 씌웠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무제한 공제를 받지 못하게 한 것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이번 조치로 연봉이 3억6250만원을 넘는 직장인 2만1000명은 앞으로 세부담이 늘어난다. 기업 임원이 받는 고액 퇴직금에도 높은 세율이 적용된다. 고액 퇴직금에 대해 정부는 퇴직소득과 근로소득으로 구분해 따로 세금을 매기는데, 이 중 근로소득의 세율이 더 높다. 정부는 이번에 퇴직소득으로 인정해주는 범위를 기존 대비 3분의 2로 줄여 세금을 더 내게 했다.

전용면적 85㎡, 공시가격 6억원 이하인 '소형 주택' 임대사업자도 앞으로는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지금은 소형 주택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액 감면율이 30%(임대 기간 4년 이상), 75%(8년 이상)인데 2021년부터는 각각 20%, 50%로 줄어든다. 1세대 1주택자에게 주던 비과세 혜택 범위도 줄어든다. 먼저 1세대 1주택자 중 수도권 도시 지역에 있는 넓은 마당(부수 토지)이 딸린 주택을 팔려는 사람은 마당 중 주택 크기의 3배가 넘는 부분은 비과세 혜택을 볼 수 없다. 상가와 주택이 섞인 '겸용 주택'은 주택 면적이 상가 면적보다 클 경우 전체를 주택으로 인정받아 1세대1주택 비과세 혜택을 받았지만, 앞으로는 실거래가 9억원이 넘는 겸용 주택은 주택 면적이 더 넓어도 상가 부분은 팔 때 따로 세금을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