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역 곳곳에서 학교 유치전이 벌어지고 있다. 학교 신설과 배정을 놓고 집단행동을 하거나 갈등을 벌이는 아파트 단지가 잇따르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소재 9개 아파트, 답십리동 18개 아파트, 용두동 2개 아파트 등 총 29개 아파트 주민들은 ‘전농 답십리 명문고 유치 촉구’ 1만명 서명 운동을 진행 중이다.

이 지역은 전농답십리재정비촉진지구 일대로, 2003년 서울시의 2차 뉴타운 지정 이후 새 아파트가 들어섰다. 기부채납을 통해 학교 용지도 마련됐지만, 풀만 무성한 빈 땅으로 몇년째 방치돼 있다. 고등학교 이전 및 설립을 두고 교육청과 지역 주민 간 시각 차가 있기 때문이다.

전농7구역 조합이 기부채납한 학교용지.

앞서 서울의 한 고등학교가 이곳으로 이전하겠다는 의사를 보였으나, 서울시교육청은 동대문구에 일반고를 추가로 설립할 만큼 학생 수요가 없다는 이유로 반려했다. 동대문구 전체 학교 수와 학생 수요를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주민들의 시각은 정반대다. 주민들은 "전농동과 답십리동 지역에 일반고는 해성여고와 동대부고인데, 두 곳 모두 남녀공학이 아니라 사실상 진학할 수 있는 고등학교가 1곳인 셈"이라면서 "중학교까지 잘 다니다 진학할 고등학교가 부족해 전전긍긍하다 다른 지역구로 이사를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호소했다. 동대문구의회도 "전농·답십리 뉴타운, 이문·휘경뉴타운 사업 등 도시환경개선사업으로 가구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며 학교 신설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초등학교 배정 문제를 놓고 지역 주민 간 갈등이 불거진 곳도 있다. 서울 강동구 고덕주공 3단지를 재건축해 내년 완공 예정인 상일동 ‘고덕아르테온’은 앞서 재건축 허가 조건으로 학교 용지를 기부채납했고, 이곳에 고이초등학교가 신설된다. 하지만 고덕아르테온 입주 예정자들이 통학 독점권을 주장하면서 다른 아파트 단지와 갈등을 빚고 있다.

학교 부지가 협소해 7층짜리로 지어지는데 학생이 더 유입돼 학급당 인원이 늘어나면 학생 과밀에 따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반면, 인근 ‘고덕숲 아이파크’ 입주자들은 "교육청이 제시한 근거리 배정 원칙을 무시한 채 학교 과밀을 이유로 다른 아이들의 통학을 반대하는 것은 지역이기주의"라고 비판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결국 서울강동송파교육지원청교육장은 고덕아르테온(고덕3단지) 전체와 고덕숲 아이파크(고덕4단지)101동~103동을 고이초로 통학구역을 배정하겠다고 이달 12일 고시했다. 단, 주민 우려와 반발을 고려해 학교별 과밀 상황에 따라 고덕지역 입주 완료시점인 2021년 통학구역을 재협의한다는 별도 조항을 뒀다.

서울 송파구 재건축 단지에서도 중학교 유치가 주요 화두였다. 잠실시영을 재건축해 6864가구가 10년 전 입주한 송파구 신천동 파크리오 주민들은 인근 잠실고를 남녀공학 학교로 변경하고, 중학교 등을 신설해달라는 청원 운동을 벌였다.

가락시영을 재건축한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의 경우 교육부가 아파트 안에 초등·중학교 통합 설립을 승인하면서 중학교 문제가 해소됐으나, 작년 12월 서울시교육청이 신설 초·중교 3곳을 혁신학교로 직권지정 하려다 문제가 불거졌다. 주민들이 반대 집회를 벌이는 등 크게 반발하자 결국 교육청이 백기를 들었다.

학교 문제가 자녀교육 여건은 물론 집값에 영향을 주다보니 학부모뿐 아니라 건설업계도 촉각을 세운다. 한 예로 서울 마포구 염리동 ‘GS자이’(2003년 준공)는 염리초등학교를 끼고 있는 단지로,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주변 아파트와 비교해 집값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GS자이 전용 84.69㎡는 최근 11억원대에 실거래가 이뤄졌는데, 이 단지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다른 단지 84.96㎡짜리는 8억원대에 거래됐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공교육 시스템도 집값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재개발 재건축 추진 지역 조합이 부지를 기부채납하고 지역 곳곳에서 학교를 경쟁적으로 유치하려는 것 역시 향후 자본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