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기업들이 벌어들인 돈이 13년 만에 처음 줄었다. 문재인 정부가 시급한 산업구조 개편은 외면한 채 기업에 부담이 큰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를 밀어붙인 결과다. 더욱이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은 내리막길을 타고 있다. 7월 들어 지난 20일까지 수출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3.6%(44억6000만달러) 줄어 작년 12월 이후 8개월 연속 뒷걸음질하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이 여전한데 일본의 경제 보복이라는 악재까지 불거지면서 기업들 앞날은 어느 때보다 어둡다.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는 "지금 우리 경제의 고질병은 수요(가계의 소비)가 아닌 공급(기업의 생산성) 측면에 있다"며 "기술 발전과 인구구조 변화 속에서 어떻게 기업들이 경쟁력을 유지할지에 국가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ICT·석유화학…올해 들어 전(全)방위 기업 실적 추락

올 들어 기업들의 추락은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작년에 잠시 수주난에서 벗어났던 조선업은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의 상반기 수주액이 95억8000만달러로 작년 상반기보다 19.1% 감소했다. 조선 3사의 올해 수주 목표는 320억7000만달러인데, 한 해의 절반이 지난 지금 달성률은 29.8%에 그친다. 상반기 세계 선박 발주가 미·중 무역 분쟁 영향으로 작년보다 42%나 줄어든 탓이다.

올 상반기 ICT(정보통신기술) 수출은 작년보다 18.4% 감소했다. 우리나라 상반기 수출 감소율(-8.5%)보다 감소 폭이 크다. ICT 수출의 72%를 차지하는 전자부품 중에서 반도체(-22.4%), 디스플레이(-19.5%) 수출이 20% 안팎 감소했다. 산업연구원은 "반도체는 수출 단가가 하반기에도 반등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ICT 업종의) 하반기 수출도 16%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정유와 석유화학 업체들도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상반기 석유 제품 수출은 8.5%, 석유화학은 13% 감소했다. 두 업종 모두 수출이 올 1월부터 6개월 연속 마이너스다. 하락 폭이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올해는 정제 마진이 크게 나빠졌다. 정제 마진은 최종 석유 제품인 휘발유·경유·나프타 등의 가격에서 원유의 가격과 운임·정제 비용 등 원료비를 뺀 값인데, 상반기 내내 손익분기점인 배럴당 4~5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다. 아시아 경쟁국과 수출 대상국이 정제 설비를 늘리면서 공급 과잉이 심화된 영향이다.

주력 업종 기업들이 줄줄이 고전하면서 올해 상반기 거래소에 상장된 기업 10곳 중 4곳의 영업이익이 작년보다 감소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왔다. 증권정보회사 에프앤가이드가 3곳 이상의 증권사가 실적 전망치를 내놓은 254개 주요 상장사의 상반기 영업이익 전망치를 분석한 결과다. 254개 상장사 중 106개사가 상반기 영업이익이 작년 상반기보다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삼성전자·SK하이닉스·이마트·SK이노베이션 등 18개 상장사는 영업이익이 작년의 절반 이상 줄어들 것으로 추정됐다.

◇반(反)기업 정책에 '제조업 역(逆)성장' 3년 만에 재발 위기

주력 산업의 위험 신호는 현 정부 출범 전부터 이미 요란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제조업 매출은 2014년 건국(建國) 이래 처음 뒷걸음쳤다. 조선·해운·건설 등 주력 산업이 부진한데 당시 경기마저 꺾여 제조업 외형이 전년보다 1.59% 줄었다. 초유의 '제조업 역(逆)성장'은 2016년까지 3년간 이어지다 반도체 경기가 살아난 2017년에야 겨우 멎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런 사정을 무시한 채 지금까지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이 벌어들인 돈을 세금으로 받아 소득 주도 성장 같은 반시장적인 경제 실험에 쏟아부었다. 글로벌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한데 정부가 앞장서 기업에 부담을 더하는 제도를 밀어붙였으니 반도체 착시에 가린 밑바닥 기업 사정이 더 나빠진 것이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제조업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8% 줄었다. 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국내 산업의 민얼굴이 드러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추세가 이어질 경우 올해 3년 만에 제조업의 역성장이 재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주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연구·개발 역량을 갖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구조 개편이 어느 때보다 급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