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동차가 '차세대 먹거리'로 떠오르면서 세계 배터리 업계의 외연이 확대되는 가운데 삼성SDI의 성장세가 유독 뒤처지고 있다. 2년 전 경쟁사들이 투자하는 시점에 제때 투자를 못한 여파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

21일 배터리 시장조사업체인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1~5월 전 세계 삼성SDI 배터리 사용량은 전년 동기 대비 6.2% 늘어나는 데 그쳤다. 세계 점유율 1위인 중국 CATL 사용량은 110.4%, 2위인 일본 파나소닉은 83.8% 늘었다. 한국 LG화학·SK이노베이션도 같은 기간 최소 2배 이상 늘었다. 삼성SDI만 성장이 눈에 띄게 뒤처진 것이다. 이에 따라 삼성SDI는 세계 시장 점유율도 4.9%에서 2.9%로 2%포인트 떨어졌다. 순위는 6위에서 7위로 한 단계 내려왔다.

◇업계 "이재용 부회장 부재 때 투자 못한 영향"

전기차용 배터리는 조 단위 선제 투자가 필수다. 자동차 기업들은 배터리 기업들의 투자 여력과 기술 수준을 판단해 대규모 물량을 선(先)발주한다. 이를 수주한 배터리 업체들은 대규모 투자로 공장을 건립하고 배터리를 만들어 납품해 매출을 올린다. 이러다 보니 초대형 투자 없이는 수주·납품·실적 향상이 불가능하다.

업계에 따르면, 배터리 투자 경쟁이 격화되기 시작한 시점은 2017년 전후다. 미국 테슬라의 전기차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독일 폴크스바겐·BMW, 스웨덴 볼보, 미국 GM 등 세계 각국의 대표 자동차 기업들이 속속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면서 수요가 폭증했다. 하지만 삼성SDI는 2017년부터 작년까지 신규 시설 구축이 없었다. 반면 같은 기간 LG화학은 폴란드 공장 증설에 1조3200억원을 투입했다. SK이노베이션 역시 작년 헝가리 코마롬에 공장을 신설하면서 8400억원, 중국 창저우와 미국 조지아주의 배터리 공장 구축에 2조원 넘게 투자한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이 기간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정 농단 사태에 휘말려 구속 수감(2017년 2월~2018년 2월)되면서 삼성그룹 전체의 신규 투자가 사실상 멈췄던 시기와 일치한다. 비록 2017년 삼성전자가 역대 최대 규모의 설비투자를 집행했지만, 이는 신규 투자는 아니었다. 기존 설비 업그레이드와 과거 결정했던 평택 반도체 공장 준공에 들어간 비용이었다. 재계 관계자는 "조 단위가 넘는 돈이 들어가는 신규 공장 설립은 오너의 판단이 필수"라며 "이 부회장의 부재로 인해 삼성SDI가 결과적으로 투자 적기를 놓쳤고, 그 영향이 지금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SDI가 LG화학·SK이노베이션과 달리 자체 투자 여력이 부족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LG화학은 석유화학에서, SK이노베이션은 정유 사업에서 막대한 매출을 낸다. 여기서 나오는 수익을 신사업인 자동차용 배터리에 투자하는 식이다. 하지만 삼성SDI의 전자재료 분야는 규모가 작은 편이라 대규모 투자금을 마련하기 어렵다.

◇삼성SDI, 사업 다각화로 타개 노려

삼성SDI는 이 같은 격차를 줄이기 위해 올 들어 투자를 늘리고 있다. 삼성SDI는 올 2월 헝가리에 제2 공장을 구축하면서 56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헝가리를 유럽 전기차 업체들을 공략하는 거점으로 키운다는 것이다. 중국 시안에도 제2 공장 증설을 계획 중이다.

전기차뿐 아니라 전기자전거·ESS(에너지저장장치)·전동공구용 배터리 등으로 사업 다각화에도 적극 나서기로 했다. 삼성SDI는 중국 톈진에 소형 배터리 공장 증축을 발표했다. 하지만 ESS는 작년 원인 불명의 화재 사고를 겪었다. 전기자전거 같은 소형 배터리 시장은 수익성이 낮다는 우려에 직면해 있다. 삼성SDI 관계자는 "내부 투자를 통한 공정 업그레이드 작업 등에 연간 1조원 이상 쓰는 중"이라며 "수익성에 기반한 투자를 통해 내실 있는 성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