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자국산 반도체 소재의 수출 규제를 강화한 지 20일째가 되면서 한국 기업뿐만 아니라 일본 기업들도 피해를 보고 있다.

19일 현재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업체들은 일본산 불화수소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대신 '이삭줍기'로 재고 물량을 차츰 확보하고, 한국·중국·대만산 불화수소를 테스트하며 소재 다변화에 나서는 중이다. 오히려 일본 소재 기업들이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한국 기업의 소재 다변화가 성공하면 최대 매출처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7월 20일 자)에서 "넓게 보면 '일본의 자해(Japan's self-harm)'는 무모하다"며 "일본의 수출 규제는 경제적으로 근시안적"이라고 보도했다. 한·일 갈등이 장기화해 일본의 대(對)한국 소재 수출을 계속 중단할 경우 전 세계 기술 공급망으로 그 고통이 파급될 것이고, 결국 한·일 모두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일본 업체 주가 내리고 한국 업체는 오르고

이러한 우려는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 도쿄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스텔라케미파, 다이킨공업, 스미토모화학 등 일본 소재 업체들은 일본의 수출 규제 강화 이후 주가가 하락세다. 일본 고순도 불화수소 생산 기업인 스텔라케미파 주가는 19일 2813엔을 기록했다. 일본이 수출 규제를 발표한 지난 1일과 비교하면 3.99% 하락한 것이다. 다른 불화수소 업체인 다이킨공업의 주가도 지난 1일보다 2.65% 하락했다. 업계에선 비상장인 일본 불화수소 업체인 모리타화학도 두 회사와 비슷한 우려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일본 불화수소 업체들의 한국 매출 비중은 전체의 85% 수준으로 알려졌다. 장기간 한국으로 불화수소를 수출하지 못하면 매출에 큰 타격을 입는 것이다.

다른 반도체 소재 일본 기업들도 주가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감광액인 포토레지스트를 생산하는 스미토모화학 주가는 지난 1일 대비 5.44% 내렸다. 신에쓰화학(-3.17%), JSR(-1.08%)도 주가가 1일보다 떨어진 상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현재 D램 생산용 포토레지스트와 갤럭시 폴드 생산에 필요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일본에서 정상적으로 들어와 큰 문제는 없는 상태"라며 "하지만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불화수소를 비롯해 다양한 필수 소재에 대한 국산화를 검토하고 있어 이런 우려가 주가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반면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주가가 강보합세다. 일본의 수출 규제에서 벗어나 대체선을 빠르게 확보하며 주가가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19일 주가가 4만6800원으로 지난 1일(4만6600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SK하이닉스는 19일 주가가 1일 대비 9.7% 올랐다. 국내 반도체 소재 업체들은 국산화 가능성에 주가가 폭등했다. 불화수소 업체 솔브레인은 같은 기간 주가가 33.47% 올랐고, 포토레지스트 업체 동진쎄미켐은 33.33% 상승했다.

장기적으로는 양국 모두 타격

일본 내부에서도 이번 수출 규제가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노가미 다카시 미세가공연구소 소장은 한 전문지의 기고문에서 "일본 정부가 스스로 무덤을 팠다"고 썼다. 그는 "1~2년 있으면 (한국 반도체 업체들이) 일본산 불화수소가 없어도 중국이나 대만산으로 반도체를 제조할 수 있을지 모른다"며 "단순히 한국 기업과의 사업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삼성 같은) 주요 사업자와 협력하며 경쟁력을 높여온 소중한 기회까지 한꺼번에 잃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 기업의 주가가 떨어지지 않은 것은 단기적 충격 완화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반영됐기 때문"이라며 "한·일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양국 기업 모두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한국은 제조 기술, 일본은 소재 기술을 발전하며 한국과 일본은 동반자적 관계를 맺고 성장했다"며 "일본 소재 공급이 끊겨 한국 반도체 기술이 발전을 못 할 경우, 일본의 소재 기술 발전도 멈출 수밖에 없고 결국 공멸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