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협회가 이달 초 채권시장 전문가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했을 때 응답자의 70%는 '7월 금리 동결→7월 말 미국 금리 인하→8월 우리도 금리 인하'를 예상했었다. 18일 금리 인하를 예상한 사람은 30%에 불과했단 얘기다. 대체로 신중하게 움직이는 평소 한국은행 스타일상 미국보다 빨리 움직일 가능성은 낮다고 본 것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앞두고 생각에 잠겨 있다.

한은을 서두르게 한 결정적인 요인은 한국에 대한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다. 이번 금리 인하 결정문에는 "일본의 수출 규제 등 전개 상황이 미치는 영향을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이란 표현이 추가됐다. 금리를 동결했던 지난 5월 말 결정문에는 없었던 것이다. 미·중 무역 분쟁으로 가뜩이나 수출에 비상이 걸렸는데, 일본 수출 규제라는 돌발 악재까지 추가돼 올해 성장률이 1년 전 예상치(2.8%)보다 0.6%포인트나 낮은 2.2%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금리라도 빨리 낮춰 경기를 부양할 때라는 것이다. 이날 한은이 하향 조정한 성장률 0.3%포인트는 작년 GDP 규모(1894조원)를 감안할 경우 약 5조7000억원에 해당한다.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성장률(2.2%) 예상

한은이 올해 성장률 예상치를 2% 초반까지 낮추면서 지목한 우리 경제의 약한 부위는 미약한 민간소비 증가세와 수출 부진, 투자 부진 등 세 가지다. 민간소비는 작년에 2.8% 늘었지만 올 상반기엔 2.0%, 하반기까지 합쳐 올해 전체로는 2.3%에 그칠 걸로 봤다. 부진한 수출은 올해 연간 전체로 볼 때 제자리걸음(0.6% 증가·이하 전년 동기 대비)을, 설비투자와 건설투자는 각각 5.5%와 3.3%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경상수지 흑자는 작년 764억달러에서 올해 590억달러로 흑자 규모가 23% 줄어들 것이라고 수정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도 최근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로 한국의 반도체 생산이 10% 줄어들 경우 GDP는 0.4% 감소하고 연간 경상수지 흑자는 100억달러(약 11조7800억원)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한은 예상대로 2.2% 수준에 그칠 경우,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0.8%) 이후 가장 저조한 성장률로 기록될 전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5월 세계 각국 성장률을 전망하면서 한국은 올해 2.4% 성장해 37개 회원국 중 14위쯤 될 걸로 봤다. 2.2%로 조정할 경우 16위 수준이다.

◇연내 추가 인하 가능성도… 집값 상승이 변수

한은은 내년 성장률을 예상보다 0.1%포인트 낮춘 2.5%로 발표했지만, 전문가들은 이 역시 장담할 수 없는 숫자로 보고 있다. 늦어도 내년 1분기에는 반도체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할 것을 전제로 한 전망치이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가 노동과 자본 등 생산 요소를 효율적으로 가동해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인 '잠재성장률'도 2019~2020년 2.5~2.6% 수준으로 낮췄다. 당초 한은은 2016~2020년의 잠재성장률을 2.8~2.9% 수준으로 봤다.

이날 채권시장에서는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1.345%,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1.472%로 마감해 각각 2016년 10월 이후 2년 9개월여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시장금리가 기준금리(1.50%)보다도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는 것은 이미 시장 참가자들은 연내 추가 인하를 예상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주열 총재는 이날 금융통화위원회가 끝난 후,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한은이 어느 정도 정책 여력은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연내 추가 금리 인하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한은은 올해 8, 10, 11월 세 차례 금통위 회의를 남겨두고 있다. 다만 금리 인하가 최근의 집값 반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 만큼, 시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지켜볼 것이라는 신중론도 많다.

이 총재는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주문했다. 한은이 할 수 있는 수단을 쓴 만큼, 통화정책에 발맞춰 재정정책도 힘을 보태라는 것이다. 이 총재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오로지 통화정책으로 대처하려면 금리를 대폭 내려야 하는데, 저금리 기조에 따라 정책 여력이 예전처럼 충분치 않은 게 현실"이라며 "이럴 땐 재정을 충분히 풀어야 한다. 여력도 있고 효과도 빠르다"고 했다. 그러면서 "생산성 향상을 위한 구조개혁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