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일본 교도통신은 중국 상하이증권보를 인용해 "중국 산둥성의 화학 기업인 빈화그룹이 한국 반도체 업체에 불화수소(에칭가스)를 공급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산 불화수소 공급이 끊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가 중국산 불화수소를 대체 사용하게 됐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 보도에 대해 "현재 중국·대만·한국산 불화수소를 다각적으로 테스트하는 것은 맞지만, 어느 한 곳을 낙점해 계약을 맺지는 않았다"면서도 "일본산 위주에서 벗어나 다른 공급처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일본산 불화수소를 대체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17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솔브레인 등 국내 불화수소 제조 업체 제품을 포함해 중국·대만 업체가 생산한 불화수소를 실제 공정에 적용할 수 있는지 테스트하고 있다.

홍남기 “日, 수출 규제 철회하고 협의 나서야” - 홍남기(오른쪽)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7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홍 부총리는 “일본이 수출 통제 조치를 철회하고 협의에 나서줄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왼쪽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반도체 업체의 한 고위 관계자는 "상황이 긴급하니 모든 대체선을 점검하고, 불량률이 높아지는 걸 감수하면서라도 생산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지난 16일 "삼성 간부진은 일본 경제산업성이 규제 강화 방침을 공표한 이후 중국, 대만 등지를 방문해 대체 조달처를 찾고 있다"며 "한국 반도체 업체들이 일본 소재 업체로부터의 이탈을 본격화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보도했다.

불화수소는 반도체 회로를 깎고 불순물을 제거하는 데 필수적인 소재다. 반도체 공정에선 99.999% 이상의 고순도 불화수소를 쓴다. 그동안 한국 반도체 업체들은 일본 스텔라·모리타 등에서 고순도 불화수소를 거의 전량 수입했다. 국내나 중국 업체 등도 불화수소를 만들지만 대부분 99.99% 이하 제품이다. 숫자만 보면 0.009의 차이에 불과하지만, 공정 후 발생하는 불순물의 양으로 치면 10배 차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사용했던 일본산 불화수소는 99.999% 이상의 초고순도일 뿐만 아니라 불순물 입자의 종류, 크기도 균일해 불량률이 굉장히 낮았다"며 "반면 중국·대만·러시아 등 다른 국가 불화수소는 순도도 낮고 불순물 종류, 크기 등이 상이해 당장 적용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불순물 농도가 높거나 입자 크기가 균일하지 않을 경우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에 치명적인 손상을 일으켜 반도체 불량률은 올라간다. 일본 수출 규제로 불화수소 공급에 차질이 빚어졌음에도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중국·대만·러시아산 불화수소를 곧바로 공정에 투입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현재 99.999% 불화수소를 썼던 생산 라인에 99.99%의 불화수소를 사용할 경우 불량률이 얼마나 높아지는지 분석 중이다. 보통 6개월 이상이 걸리는 불화수소 테스트를 압축해 2~3개월 내 마무리할 계획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은 비상사태이니만큼 최대한 빠르게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테스트를 통과하면 일본산보다 불량률이 높게 나와도 당장 생산 공정에 투입하겠다는 것이 현재 삼성과 하이닉스 내부 분위기"라고 말했다. 공급처 다변화에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소재 업체는 삼성·하이닉스 측에 조만간 일본산 수준의 제품을 개발하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정부는 이날 핵심 소재·부품 연구·개발(R&D)에 대한 세제 지원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불화수소 등 반도체 소재 국산화를 촉진하기 위한 조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