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울 집값을 안정시킬 대책으로 분양가 심사를 강화한 데 이어 민간택지에도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겠다고 나서자, 분양을 앞둔 수도권 정비사업장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미 사업시행 인가를 받고 이주 단계를 밟는 재건축 조합들은 조합원 분담금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에 반발이 특히 거세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간택지 아파트에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는 문제와 관련해 "제도 도입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시행령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는 시행령이 이달 안에 마련될 경우 이르면 9월부터 실제로 분양시장에 적용될 수 있다. 김 장관은 청약 당첨자만 시세 차익을 크게 얻는 ‘로또 분양’이 될 것이란 우려에 대해 전매 제한 기간을 길게 두는 식으로 규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분양시장을 규제하는 정책들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곳은 서울의 재건축 단지 등 정비사업장들이다. 사업 진행 단계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사업성을 가늠할 핵심 열쇠가 일반분양인 재건축 단지들은 분양 승인 조건을 두고 인허가당국과 협의하거나 분양 일정을 늦추며 숨을 고르는 중이다.

애초 6월 분양을 기대했던 중구 ‘힐스테이트 세운’은 17일 현재 아직 분양 계획을 잡지 못했다. 신규 주택 공급이 드문 도심 지역에 들어서는 아파트인만큼 예비청약자들의 관심이 높지만, 후분양제 전환 여부와 분양가 등을 두고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과천주공1단지 아파트를 재건축하는 ‘과천 퍼스트 푸르지오 써밋’도 일정이 지연된 상황이다. 대우건설은 이달 중순 청약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과천시 당국과 분양 승인 조건을 두고 협의가 끝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좋은 입지 덕에 예비청약자들의 관심이 집중된 ‘브라이튼 여의도’ 역시 아파트 분양 일정을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하반기 분양시장의 기대주로 꼽히던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도 내년으로 분양일을 미룰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지난 5월 관리처분인가를 받아 늦어도 올해 12월 일반분양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분양가 규제가 강화되자 분양 계산기를 다시 두드리는 상황이다.

각각 철거 작업과 공사를 진행 중인 강남 재건축 아파트 단지들을 내려다본 모습

반면 관리처분 인가를 받아 이주나 철거 단계인 조합들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분양까지 남은 기간을 고려할 때 새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요구하는대로 기부채납 내용과 임대주택 물량까지 반영해 조합원 분담금과 일반 분양 계획을 세운 경우 애초 계획한 금액보다 낮은 값에 일반 분양을 진행하면 재건축 사업안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

신반포3차·경남아파트 통합 재건축 조합은 이달 초 철거 신고를 마쳤다. 현재 서울시가 설계 변경 심의 중이다. 조합은 이르면 올해 말 분양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관리처분 인가를 받은 재건축 사업장에도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될 경우 일반 분양을 내년 이후로 미룰 가능성이 크다.

조합 관계자는 "조합원들이 2억5000만원씩 분담하는 내용으로 지난 해 7월에 관리처분 인가를 받았는데 갑자기 분양가 상한제 대상이 되면 1인당 1억5000만원 정도 더 부담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며 "조합원 분양가격이 3.3㎡당 4900만원인데 상한제를 적용해 일반 분양자는 그보다 낮은 4200만~4300만원에 분양 받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나마 관리처분 인가를 받았지만 이주·철거 단계까지도 가지 못한 사업장들은 아예 분양시기를 늦추는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민간택지 아파트에도 상한제가 적용되면 분양 가격을 토지 공시지가에 정부가 제시한 표준 공사비를 더한 수준으로 정해야 한다. 때문에 분양일을 늦춰 한두 번 더 인상된 공시지가가 분양가에 반영되는 편이 조합원들에게 유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