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성 특파원

중국 상하이에 사는 뤄치(羅奇·30)씨의 직업은 중국인에게도 낯선 '다이서우라지왕웨궁(代收垃圾網約工)'이다. 온라인 예약을 통해 쓰레기를 대신 버려주는 사람이란 뜻이다. 지난 1일부터 상하이시가 중국 최초로 강제 쓰레기 분리수거 제도를 시행하면서 생겨난 신종 직업이다.

상하이시의 쓰레기 강제 분리수거 제도는 쓰레기를 재활용, 음식물, 독성, 기타 쓰레기 등 네 가지로 분류해 정해진 장소와 시각에 버리도록 규정했다. 어기면 개인은 최고 200위안(약 3만4000원), 기업은 최고 5만위안(855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쓰레기를 봉투 하나에 쓸어담아 아무 때나 버려왔던 시민들은 중국 역사상 가장 엄격하다는 분리수거 제도가 시행되자 답답해하고 있다. 그런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돈을 버는 이가 왕웨궁이다. 모바일 앱으로 예약을 받아 정해진 시각에 고객의 집을 방문해 쓰레기를 대신 수거·분리해 버려주는 것이다. 쓰레기 강제 분리수거가 시작된 지 채 보름도 안 됐는데, 상하이에서만 왕웨궁 전문 업체가 이미 50개를 넘어섰다. 뤄치씨는 "기본급 5000위안(85만5000원)에 실적급까지 합쳐 월 1만위안(171만원) 이상 수입도 가능하다"며 "더러워 보이지만 노력하는 만큼 벌 수 있다"고 했다.

왕웨궁의 등장은 쓰레기 강제 분리수거를 계기로 중국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출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증시에서는 쓰레기 재생 관련 종목들의 주가가 폭등했다. 중국은 지난 20년 쓰레기 분리수거 정착에 실패했지만 이번만큼은 실패하지 않겠다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시장 메커니즘까지 접목되면서 성공 가능성을 한층 높이고 있다. 쓰레기 재생 분야를 포함한 중국의 환경 산업도 대대적인 도약의 기회를 맞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강력한 강제 분리수거

중국은 2004년 미국을 추월하며 세계 1위의 쓰레기 배출국이 됐다. 한 해 배출되는 쓰레기가 무려 4억t에 이른다. 쓰레기 배출량이 경제성장률을 넘어 매년 8%씩 늘고 있는 건 심각한 문제다.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쓰레기 분리수거가 뿌리내리지 못한 것이 핵심 이유로 꼽힌다.

중국 상하이의 한 재개발 예정 지역에 플라스틱 용기가 잔뜩 쌓여 있는 모습. 상하이시는 지난 1일부터 중국 최초로 강제 쓰레기 분리수거 제도를 도입했다. 분리수거를 하지 않으면 거액의 벌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쓰레기를 대신 분류해서 버려주는 신종 직업까지 등장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00년 전국적인 쓰레기 분리수거 지침을 마련하고, 베이징과 상하이 등 8개 대도시를 시범지구로 정해 자율적인 쓰레기 분리수거를 시행해왔다. 하지만 20년간의 자율 실험은 실패로 결론났다. 시범도시의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에는 분리수거 쓰레기통들이 설치됐지만 시민들의 의식과 행동은 바뀌지 않았다. 공무원들이 분리수거 캠페인을 해도 시민들은 "쓰레기는 분리해도 어차피 쓰레기"라며 시큰둥했다. 당국이 운용하는 쓰레기차도 정작 각기 다른 통에 있는 쓰레기를 한 번에 쓸어 담아 가는 게 일상 풍경이었다.

그 결과, 중국의 쓰레기 재활용률은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재활용률이 50%가 훌쩍 넘는 독일·한국·대만은 물론, 쓰레기 대국 미국의 35%에도 턱없이 못 미친다. 그냥 버려지는 플라스틱 등이 많다 보니 중국은 해외에서 쓰레기 수입을 해오는 처지가 됐다.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량만 해도 한 해 무려 800만t(2014년 기준)에 이르는 등 세계 최대의 쓰레기 수입국이라는 오명을 썼다.

해외에선 쓰레기를 들여오는데 국내에선 음식물 쓰레기와 플라스틱, 폐건전지 등 온갖 쓰레기가 뒤범벅인 상태로 매립되거나 소각됐다. 쓰레기 매립장 주변의 마을은 독성 침출수 때문에 '암(癌)마을'로 변하고, 독성가스에 대한 공포로 인해 각지에서 쓰레기 소각장 건설 반대 시위가 이어지는 등 중국 사회는 쓰레기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세계 최대 쓰레기 수입국 전락

중국은 지난해 1월 1일부터 해외 쓰레기 수입을 중단했다. 쓰레기 분리를 위해 배수진을 친 것이다. 중국으로의 쓰레기 수출길이 끊기면서 각국에 거대한 쓰레기산이 등장하는 등 그 여파가 세계 각국을 덮쳤다. 그사이 상하이시 인민대표대회(의회)가 올 연초 쓰레기 강제 분리수거를 법제화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6월 "인민들이 쓰레기 분류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인식하게 하고 쓰레기 분류의 습관을 들이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지난 1일부터 상하이가 처음으로 강제 분리수거 시행에 들어간 것이다. 중국 정부는 상하이를 시작으로 내년까지 전국 46개 도시로 쓰레기 분리수거를 확대하고 2025년에는 전국에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중국 정부의 의지는 전례없이 강하다. 우선 벌금제도를 도입해 쓰레기 분리수거 위반을 교통 법규 위반과 같은 수준으로 만들었다. 중국판 신용불량 제도인 사회적 평점 제도도 접목했다. 쓰레기 분리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는 개인이나 기업들은 고속철·항공기 탑승에 제한을 받고 은행 대출이 어려워지는 등 각종 불이익을 받게 된다.

중국 IT업계는 스마트 쓰레기통을 내놓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베이징 시청(西城)구 한 아파트 단지에는 얼굴 인식 카메라가 달린 스마트 쓰레기통이 설치됐다. 각 쓰레기통에 달린 카메라가 주민의 얼굴을 인식해 신원을 확인하면 쓰레기통 뚜껑이 열리는 것이다. 분리를 잘해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적립금이 쌓이는 식이다. 적립금을 착실히 모으면 생활용품이나 식료품을 공짜로 받을 수 있다. 아파트 주민의 70%가 얼굴 인식 시스템 사용에 동의했다.

◇재활용 산업 체인 급성장 기대감

왕웨궁 같은 새로운 서비스가 나타나는 등 시장 메커니즘이 빠르게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과거와 다른 점이다. 매월 320위안(5만5000원)을 내면 현관 앞에 내놓은 쓰레기를 왕웨궁이 다 알아서 처리해준다. 쓰레기 분류는 고객이 하고 대신 버려주는 것만 할 경우 한 달 120위안(2만원)이면 된다. 경제성장으로 호주머니가 두둑해진 중국인들에겐 크게 부담되지 않는 지출이다. 왕웨궁 서비스는 위챗페이나 알리페이와 같은 모바일 결제 앱과 연동돼 있다. 휴대폰 하나로 서비스 신청과 결제를 간편하게 할 수 있다.

상하이에서 쓰레기 강제 분리수거가 시행된 첫날인 지난 1일. 중국 증시에서는 쓰레기 재생 관련 업체 5곳의 주가가 일제히 상한가를 기록했다. 특히 다이나그린과 푸젠 룽마 등 2곳은 지난달 19일부터 25일까지 5거래일 내내 상한가를 기록했다. 안후이 성윈이라는 업체는 열흘 만에 주가가 130%나 뛰었다.

쓰레기 분리수거로 인해 무더기로 소각되거나 매립되던 쓰레기가 줄고 재생을 위한 중간 처리 공정과 장비 수요가 폭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이 업체들의 주가도 덩달아 뛴 것이다. 분리된 쓰레기를 생화학 처리해 비료로 만들거나 생활 에너지원인 메탄가스로 변신시키는 공정도 과거보다 훨씬 더 수월해졌다. 쓰레기 분리수거가 상하이를 넘어 중국 대륙 전체로 확산될 경우, 중국 환경 산업은 사상 최대의 도약 기회를 맞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