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를 두고 열린 첫 양자협의에서 양국이 이렇다 할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회의를 마무리했다. 일본 측은 오는 24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것과 관련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각의 결정(우리나라의 국무회의) 후 공포하고 그로부터 21일 경과한 날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양국 간 협의 중단 의사가 없는 만큼 의견 수렴 마감 시한인 24일 이전에 수출통제 당국자 간 회의를 개최하자고 요청했다. 정부는 규제의 근거가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우리 측 입장을 충분히 전달했다고 했다. 일본 측은 24일 전 회의 개최 요청에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호현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정책관이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한일 양자실무협의 결과 브리핑’에서 협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호현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정책관은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한일 양자실무협의 결과 브리핑'에서 "양국간 입장차는 아직 여전히 있지만, 일본 측에서 명쾌하게 제시하지 않았던 사안들에 대해 충분히 질문을 했고 우리가 문제제기 할 수 있는 부분도 상당 부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 일본 측은 수출통제 강화 조치의 취지에 대해 국제통제 체제 이행을 위해 한국에 개선 요청을 해왔으나, 재래식 무기에 대한 캐치올(Catch-All) 규제가 도입되지 않았고 최근 3년간 양자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한다고 설명했다. 캐치올 규제란 수출 금지 품목이 아니더라도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이용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경우, 수출 당국이 해당 물자의 수출을 통제하는 제도다.

이에 대해 정부는 그간 캐치올 의제에 대한 일본 측 요청이 없었고 한국의 캐치올 규제는 일본 측 주장과 달리 방산물자 등 대량살상무기와 재래식 무기에 대해서도 작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올해 3월 이후 협의회를 개최하기로 양국이 합의했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일본은 지난 4일부터 발효된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통제 강화에 대해 ▲국제수출 통제 체제의 규제 대상으로 공급국으로서의 책임에 따른 적절한 수출관리의 필요성 ▲한국 측의 짧은 납기 요청에 따른 수출관리 미흡 ▲일본에서 한국으로 가는 수출과 관련한 부적절한 사안 등이 발생하고 있어 유사 사례가 발생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해명했다.

다만, 일본 측은 부적절한 사안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 정책관은 "언론에서 제기되고 있는 사례에 대해 '일정 부분 우려를 갖고 있다'는 언급은 했지만 구체적으로 맞다, 틀리다고는 얘기하지 않았고, 북한을 비롯한 제3국 반출과 관련된 것은 아니라는 뉘앙스로 얘기했다"며 "다만,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기는 어렵다고 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통제 강화 조치 사유가 매우 추상적이며, 사전 합의 없이 3일만에 이뤄져 정당하지 않다고 했다. 일본 측이 문제시 한 짧은 납기 문제는 수출기업과 수입기업 간에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고도 했다. 아울러, 전략물자관리도 산업부를 비롯해 전략물자관리원, 원자력안전위원회, 방위사업청 등 100여명의 인력이 담당하는 등 일본보다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 측은 이번 수출통제 강화 조치에 대해 국제통제체제에 따른 관점에서 일본이 개별적으로 심사해 일본으로부터 수출하는 내용을 적절하게 운영하기 위한 것이지, 수출금지 조치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최종적으로 순수한 민간용도라면 무역제한의 대상이 아니며, 다소 시간이 걸릴 수는 있지만 허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정책관은 "일본 측에 포괄 허가에서 개별 허가로의 변경이 충분한 고지 없이 이뤄졌고 통상 90일에 이르는 심사 기간에 대해 기업들이 우려하는 등 심사 시간이 불확실하면 제도 운용의 투명성에 문제 소지가 있는 만큼 심사 기간을 단축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했다.

이날 양자협의는 오후 2시부터 일본 도쿄 경제산업성에서 이뤄졌다. 우리 측에서는 산업부 무역안보과장, 동북아통상과장이 일본 측에서는 경제산업성 무역관리과장, 안전보장무역관리과장이 참석했다. 당초 2시간 가량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 회의는 오후 7시 50분까지 이어졌다.

이 정책관은 "질의할 내용이 많았고 논의 이후 어떤 내용들을 어떻게 언론에 공개할지에 대한 협의도 이뤄졌다"며 "회의장 내에서는 상당히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