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순자금조달 15.8조로 늘어…수익성 감소 탓

올해 1분기 정부 곳간에 쌓인 자금이 4년 만에 가장 적은 수준을 나타냈다. 세입은 줄고 재정지출은 대폭 늘린 영향이다. 반면 가계는 강도높은 부동산 규제책에 주택 투자를 줄이면서 여윳돈이 크게 증가했다. 기업들은 반도체 불황, 미·중 무역분쟁으로 수익성이 둔화되면서 여유자금이 쪼그라 들었다.

한국은행이 10일 발표한 '2019년 1분기 자금순환(잠정)'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일반 정부의 순자금운용 규모는 6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2015년 1분기(-6조9000억원) 이후 최소 규모로 1년 전(9조원)에 비해서는 8조4000억원 줄었다. 순자금운용은 예금, 채권, 보험, 연금 준비금으로 굴린 돈(자금 운용)에서 금융기관 대출금(자금 조달)을 뺀 금액으로, 여유자금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 5월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왼쪽에서 네 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정부의 여유자금이 대폭 줄어든 건 세입은 소폭 줄어든 반면 세출은 크게 늘어나서다. 올해 1~3월 총 국세 수입은 78조원으로 1년 전보다 8000억원 감소했다. 4대 보장성 기금을 제외해 정부의 순 재정상황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1분기 25조2000억원의 적자를 나타냈다. 특히 정부의 순자금운용에는 국민연금이 포함돼 있는데 이를 제외하면 1분기 마이너스를 나타냈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 3년간 세수호황에 힘입어 50조원 가량의 잉여를 기록했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기업 수익성 악화와 주택거래 감소로 세입은 줄고 경기부양을 위한 세출은 늘어날 예정으로 향후 정부 여유자금은 예년에 비해 감소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한은 관계자는 "올해 경제상황이 안좋은 방향으로 진행되면서 정부가 지출을 늘렸다"며 "하반기에는 세수가 구축되면서 여유자금이 상반기에 비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순자금운용 규모는 26조7000억원을 나타냈다. 2016년 1분기(28조8000억원) 이후 최대 규모다. 한은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동산 안정화 대책이 시행되면서 신규주택 수요가 감소한 것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집을 사기 위해 빚을 내는 수요가 감소했다는 얘기다. 국토교통부가 집계한 1분기 전국 주택 매매거래량은 14만5000호로 전분기(21만3000호)보다 46.2% 감소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자금조달이 8조7000억원에 그쳐 1년전(23조1000억원)에 비해 대폭 줄었다. 그 중에서 금융기관 차입은 4조7000억원으로 1년 전(21조6000억원)에 비해 5분의 1수준에 그쳤다. 자금운용도 35조4000억원으로 전년대비 5조9000억원 줄었지만 자금조달이 더 크게 감소하면서 순자금운용 규모가 늘어난 것이다.

1분기 기업의 순자금조달은 증가했다. 비금융법인 기업의 순자금조달은 15조8000억원으로 전년(13조1000억원)대비 확대됐다. 순자금 조달은 자금 조달에서 자금 운용을 뺀 것으로, 자금운용 체계에서는 자금운용액에서 자금조달액을 제한 액수가 양(+)일 경우 순자금운용, 음(-)일 경우 순자금조달로 지칭한다.

기업의 자금조달이 확대된 건 수익성 악화 때문이다. 1분기에는 기업의 투자가 위축되면서 자금조달도 줄었지만 수익 감소로 인한 자금운용 감소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 비금융법인의 자금운용은 30조5000억원으로 전년(48조6000억원)대비 18조1000억원 줄었고, 자금조달은 1년전(61조6000억원)보다 15조3000억원 감소한 46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한은 관계자는 "1분기 기업 투자를 보면 전년에 비해 다소 부진했던 측면이 있지만 순자금조달이 확대된 주 요인은 반도체 가격 하락,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수익성이 다소 둔화된 데 따른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1분기 정부와 가계, 기업 등 경제주체들의 경제활동 결과로 발생한 국내부문의 순자금운용 규모는 13조원을 기록했다. 2012년 2분기(4조2000억원) 이후 약 7년 만에 가장 적은 규모다. 가계의 순자금운용이 늘었지만 정부의 순자금운용이 대폭 줄고, 기업의 순자금조달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한편 1분기말 국내 비금융부문의 금융자산은 8262조200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28조1000억원 증가했다. 금융부채는 180조 늘어난 5514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국내 비금융부문의 순 금융자산(금융자산-금융부채)은 2748조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120조1000억원 늘었다.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 배율은 1.50배로 전년(1.49배)대비 소폭 늘었다. 가계의 경우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 배율은 2.08배에서 2.12배로 더 큰 폭으로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