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주요 직책에 과거 한진해운 출신 인사가 임명되면서 조직 구성과 내부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특히 한진해운 출신 박진기 부사장이 지난 3월 핵심 직책인 컨테이너 총괄을 맡으면서부터 한진해운 색채 더하기가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9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지난 1일부로 ‘컨테이너 영업 최적화’팀을 신설했다. 컨테이너 영업 최적화팀은 장비 활용을 확대해 수익성을 높이는 등 ‘수율 관리(Yield Management)’를 맡게 된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컨테이너 선복(적재용량) 관리를 통합적으로 수행해 선복 활용을 극대화하고, 항로 간 협업을 강화하기 위해 컨테이너 영업 최적화팀을 신설했다"고 말했다.

현대상선 유조선.

해운업계에서는 현대상선 신설 조직인 ‘컨테이너 영업 최적화’팀이 과거 한진해운 RM(Revenue Management‧수익관리)팀과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RM팀은 한진해운이 2005년부터 경영 혁신을 위해 추진했던 ‘프로세스 이노베이션(PI)’ 프로젝트의 하나로 만들어진 부서다. RM팀은 컨테이너 장비와 선복 운영, 고수익 화물 위주 선적 등을 통한 수익 관리 등을 맡았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컨테이너 산업에서 수율 관리는 결국 운임이 비싼 화물 먼저 싣고, 장비를 효율적으로 분배해 최대한 많은 화물을 실어 날아 수익을 내자는 의미"라며 "현대상선이 한진해운 RM팀을 참고해 조직을 신설했다고 단정 지을 수 없지만, 두 조직이 하는 역할이 같은 것은 맞다"고 했다.

현대상선 컨테이너 영업 최적화팀은 박진기 부사장 주도로 만들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진기 부사장은 한진해운에서 미주 영업, 얼라이언스(동맹) 등 다양한 부문에서 경험을 쌓은 글로벌 컨테이너 전문가다. 최근 현대상선이 세계 3대 해운 동맹인 ‘디얼라이언스’에 가입하는 과정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재훈 사장에 이어 2인자로 영입된 박진기 부사장은 현대상선 핵심 사업인 컨테이너 부문을 총괄하면서 사실상 조직을 이끌고 있다. 해운 전문가가 아닌 배재훈 사장은 컨테이너 사업과 관련된 사안을 박진기 부사장에게 일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컨테이너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비용 관리를 책임지는 항만물류사업본부장 자리도 한진해운 출신 윤상건 상무가 맡고 있다.

현대상선 컨테이너 부문의 주요 직책뿐 아니라 이사회도 한진해운 인사가 장악했다. 올해 3월 사외이사로 임명된 윤민현 전 장금상선 상임고문은 한진해운 기획조정실 상무를 지냈다. 현대상선 이사진 5인 가운데 사내이사 박진기 부사장, 사외이사 윤민현 전 고문 등 2명이 한진해운 출신이다. 배재훈 사장이 외부 인사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사회에 현대상선 인사로 분류할 수 있는 인물은 송요익 사외이사뿐이다.

주요 인사뿐 아니라 한진해운 출신 경력 사원도 대거 합류했다. 현대상선이 경력 채용한 한진해운 직원 수는 2017년 파산 직후 60여명에서 현재 100명 수준으로 확대됐다. 현대상선 육상직 직원 893명의 10%가 넘는다.

현대상선이 과거 한진해운 직원 채용을 늘리는 이유는 국내 컨테이너 전문 인력이 한정되기 때문이다. 컨테이너 사업은 벌크‧벙커 등 다른 해운 사업과 다르게 해외 화주 영업‧관리, 얼라이언스 경험 등이 중요하다. 내년 초대형 선박 20척 도입을 앞둔 상황에서 이를 운용하려면 인력이 더 필요한데, 즉시 투입할 수 있는 컨테이너 인력이 과거 한진해운 직원밖에 없다. 현대상선은 올해 상반기에 이어 최근에도 경력사원 모집 공고를 내고 컨테이너 전문 인력을 채용 중이다.

현대상선은 최근 새 기업이미지(CI)를 선포하고 국내외 모두 통합된 ‘HMM’ CI를 사용하게 됐다. 기존 현대상선 직원들과 새로 합류한 한진해운 직원들이 합심해 목표를 향해 나아가자는 취지에서다. 현대상선은 향후 사명을 변경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국내 컨테이너 전문 인력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현대상선이 규모를 키울수록 과거 한진해운 직원 채용 규모를 늘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한진해운이 가지고 있던 시스템, 문화 등이 자연스럽게 도입되면 현대상선도 예전과 다른 회사가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