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장기화되면 펀더멘털 우려 증폭될 듯
'환율 쇼크' 재발 확률은 '글쎄'…당국 경계감 남아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를 발표한 이후 주요국 통화 중에서 원화의 절하폭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미·중 무역분쟁에 이어 우리나라의 성장세를 악화시킬 요인으로 지목되면서 한 달 전 외환시장을 뒤흔들었던 '환율 쇼크'가 재발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8일까지 원화는 달러대비 2.3% 절하됐다. 원·달러 환율은 같은 기간 1154.7원(종가)에서 1182.0원 올랐다. 원화의 절하폭은 주요국 통화 중 가장 컸다. 유로(-1.4%), 영국 파운드(-1.4%), 일본 엔(-0.8%) 등 선진국 통화의 경우 가치는 낮아졌지만 절하폭은 원화보다 적었다. 신흥국 통화 중에선 중국 위안화(-0.2%), 러시아 루블(-0.8%), 남아공 란드(-0.3%)가 절하됐고, 인도 루피(0.6%), 브라질 헤알(1.1%), 아르헨티나 페소(1.6%) 등은 절상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원화를 끌어내린 주요 원인으로 일본의 수출규제를 지목하고 있다. 미국 고용시장이 호조를 보이면서 연방준비제도(Fed)가 이번달에 금리를 0.50%포인트 인하할 확률이 낮아져 미 달러 가치가 1.3% 상승한 영향도 있지만 타 통화대비 절하폭이 큰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외신을 통해 일본의 수출 규제 소식이 전해진 건 지난달 30일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일부터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기판 제작에 쓰이는 소재 3개 품목을 한국에 수출할 때 절차를 까다롭게 하고 있다.

서정훈 KEB하나은행 연구원은 "한동안 상승압력이 높을 것으로 보고 원·달러 환율에 대한 전망을 1180원대 중반까지 열어놓은 상황"이라며 "시장에서 악재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이 해소되지 않는 한 1170원 아래로 내려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로 우리나라의 성장세가 더욱 둔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올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8%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은 올해보다 더 낮은 1.7%로 제시했다. 모건스탠리는 일본이 3개의 반도체 소재 품목에 대해 한국 수출을 제한한 조치가 국내 업체들의 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한국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달 18일 한은이 발표할 7월 경제전망에서도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영향이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윤여삼 메리츠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에서의 수입이 비중 자체는 크지 않지만 핵심 부품에 규제가 적용돼 영향이 상당히 클 것으로 본다"며 "규제가 지속된다면 올해 성장률을 0.1~0.2%포인트 정도 낮출 수 있는 요소"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같은 성장세 둔화 우려가 외환시장으로 전이돼 한 달 전과 같은 환율쇼크를 유발할지에 대해서는 신중론이 앞선다. 우선 외환당국의 개입에 대한 경계심이 있는 데다 아직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등 관련 주식에 큰 영향이 있지는 않아 1200원을 위협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견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국인이 우리나라 채권을 지속적으로 매수하는 상황에서 환율이 1200원을 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한 달 전 외환당국이 처음엔 늦장대응을 했지만 이후에는 상당히 강한 개입을 지속하면서 환율을 관리한 데 대한 경계심이 아직 남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