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키코(KIKO) 사건에 대한 재조사 결과를 금융감독원이 이달 중 공개한다. 금감원 안팎에선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피해를 본 기업들에 상품을 팔았던 은행들이 손해의 20~30%를 보상해주라는 내용이 골자일 것이라는 관측이 대다수다. 하지만 최종구 금융위원장조차 지난 5일 기자간담회에서 "(분쟁 조정 결과가 나와도) 소송 등 추가 절차를 밟지 못하니 (키코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려운 것"이라고 할 정도로 재조사가 무리였다는 평가가 금융계에선 지배적이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여당이 금융 적폐로 몰고, 학자 출신 금감원장이 칼 뽑아

키코는 환율이 변해 수출로 번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기업들이 이용하는 일종의 금융 파생상품이었다. 2008년 글로벌 위기가 닥치기 전, 환율이 달러당 1100~1200원대의 안정적인 구간에서 움직여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들도 이 상품에 가입해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위기가 터지고 환율이 1800원대까지 치솟자 환(換) 위험을 막아준다던 키코 탓에 거액의 손실을 보는 기업들이 속출했다. 기업들은 상품을 판 은행들에 속았다며 피해공동대책위를 구성해 소송전에 나섰고, 금감원도 은행들 책임이 없는지 조사에 나섰다.

그 결과, 금감원은 2010년 은행과 소속 임직원들에게 경징계를 내렸다. 대법원은 2013년 키코 문제를 둘러싼 분쟁에 대해 "(상품 자체가) 사기는 아니고, 은행들이 설명 의무가 불완전했던 경우 일부(사안별로 5~50%)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법원 판결에 따라 은행들은 소송을 건 기업에 일부 배상을 해주고 사안을 마무리했다. 금융계에선 금감원이 징계를 내렸고, 소송도 대법원에서 마무리돼 이 문제를 '끝난 일'이라 여겼다.

4년 넘게 잠잠하던 키코 사건에 다시 불씨를 댕긴 것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벌어진 적폐 청산 움직임 탓이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 문제가 '금융판 적폐'라며 재조사를 강하게 요구했고 금융위와 금감원은 서슬 퍼런 정권의 요구에 "키코 피해자에 대한 재조사와 적극적인 지원안을 모색하겠다(2017년 12월)"고 물러섰다. 그러고도 작년 봄까지 진척이 없었던 키코 문제 재조사는 윤석헌 금감원장이 자리에 앉자 급물살을 탔다. 윤석헌 체제 출범을 계기로 금감원은 키코 문제에 대한 분쟁 조정을 키코 피해 기업 공동대책위에 약속했고, 금융위와 금융계의 반대에도 절차를 밀어붙였다.

◇은행권 "금감원 후환 두렵지만, 법률상 의무 없는데 돈 주면 배임"

그러나 1년이 넘게 지나 이 문제에 대한 분쟁 조정 결과 발표가 임박한 요즘, 금융계에선 "금감원이 도대체 어떻게 일을 수습하려는지 궁금하다"는 냉소적인 평가가 다수다. 금감원의 분쟁 조정은 당사자가 모두 수긍해야 성립하고, 그렇지 않으면 법원의 중재나 소송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하지만 키코 사건은 이미 대법원 판결이 났고, 손해배상 시효(時效)가 한참 지나 민사소송을 새로 걸 수도 없다. 결국 은행이 스스로 판단해 금감원의 분쟁 조정 권고에 응하는 길뿐이다. 심지어 금융 당국 내부 관계자조차 "금감원이 보상을 권해도 은행들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은행들이 이행 기간이 지날 때까지 아무 행동을 안 하면 강제조치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은행들 입장에선 금감원 말을 완전히 무시했다간 후환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어떤 식으로든 성의 표시를 할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실제로 KT ENS의 특정금전신탁 불완전판매 사건에선 은행들이 시효가 지난 사안인데도 금감원의 '조정'을 수용해 일부 금액을 배상해 준 일이 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시중은행장은 "금감원 요구를 듣지 않으면 부담이 크지만, 그렇다고 법률상 의무가 없는데 수십억원씩 돈을 썼다간 당장 주주에 대한 배임(背任)이 된다"며 사실상 금감원 요구를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했다.

기업들도 별다른 소득을 올리지 못할 것으로 예상돼, 여당과 금감원은 기업들에 공연히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만 부풀렸다는 비판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키코(KIKO·Knock-In, Knock-out)

환율이 일정한 범위 안에서 움직일 경우 만기에 미리 정해놓은 환율로 약정 금액을 팔 수 있도록 한 금융 파생상품. 예를 들어 만기시 1달러당 원화 환율이 1000원으로 떨어지더라도 약정 환율이 1050원이라면 키코에 가입한 기업은 1050원에 달러를 팔아 이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환율이 미리 약속한 변동 범위를 벗어날 경우 기업은 약정 환율과 실제 환율 차이의 2배를 은행에 물어줘야 한다.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급등하면서 738개 국내 기업이 3조원 넘는 손실(2010년 회계연도 기준)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