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수출 규제에 나선 반도체 제조용 화학 소재를 진작에 국산화할 수 있었지만, 정부의 환경 규제 강화 조치와 업계의 소극적 대응 때문에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왔다.

7일 반도체 산업 구조 선진화 연구회는 '일본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대응 방안 검토' 보고서를 내고 "학계를 중심으로 반도체 소재 국산화에 대한 필요성이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이번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큰 진전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회는 노화욱 전 하이닉스반도체 전무(극동대 석좌교수)가 회장을 맡고, 반도체 학계와 산업계 관계자 300여 명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지난 1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요한 불화수소(에칭가스), 포토 리지스트(감광액),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소재의 수출 규제를 강화하자, 관련 입장을 낸 것이다.

연구회는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는 환경 규제로 인해 국내 생산이 쉽지 않다"고 했다. 2012년 구미 불산 누출 사고가 발생하자 정부는 화학물질관리법 등 관련 규제를 강화했고, 국내 업체가 불화수소 생산 투자를 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실제로 강화된 규제는 기존 유해화학물질관리법과 비교해 취급시설 기준이 기존 79개에서 413개로 5배 이상 늘었다.

반도체 부품·소재 산업을 키우기 위한 정부와 업계의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보고서는 "국내의 한 소재 가공업체가 에칭가스의 자체 생산을 검토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환경 규제로 생산이 어려우니 포기하라'고 권유하기도 했다"고 했다. 또 "포토 리지스트의 경우, 대기업이 한국 재료 회사에 대해 기술력 등을 이유로 기술 지원에 소극적이었다"며 "특히 차세대 재료에 대해서는 (한국 기업과) 함께 개발하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부의 지원 의지도 약했다. 연구회는 "한국은 세계 최고 반도체 회사를 보유하고 있으나 반도체 가공 공정에 들어가는 소재·장비를 개발할 수 있는 민관 공동연구소가 없는 상황"이라며 "미국 IBM과 뉴욕주 정부가 함께 반도체 장비·소재를 연구하는 알바니 컨소시엄을 만들었듯 한국도 전략적으로 초기 기술을 확보할 연구소를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